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빠져 살았던 그 시절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스파게티를 먹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점심으로 뭐 먹을래? 묻거나 소개팅한 남자와 밥을 먹으러 갈 때 혹은 누군가 고맙다며 밥을 산다고 할 때 무조건 스파게티를 외쳤다. 처음에는 토마토미트볼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크림스파게티를 한번 먹어본 후에는 고소하게 퍼지는 걸쭉한 크림맛을 사랑하게 됐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는 유독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쓸 필요가 있냐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할 집안일들을 하루키만의 섬세한 감각으로 풀어내는 게 좋았다. 문학이란 게 일상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문어체를 사용해서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하고 거들먹거리는 건 줄만 알았는데 하루키를 만나고 난 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작고 사소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됐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에 <스파게티의 해에>라는 작품이 있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에 수록되어 있는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1971년, 그해는 스파게티의 해였다.
1971년, 나는 살기 위해 스파게티를 삶고 있었고 스파게티를 삶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알루미늄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증기야말로 나의 자랑이었고 소스 팬 속에서 부글거리고 끓고 있는 토마토소스야말로 나의 희망이었다.
예전에는 이 문장이 주는 의미를 잘 몰랐다. 그냥 스파게티가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쓰일 수 있구나. 뭔가 멋있는 시작인데. 하며 단순한 감탄을 했었다. 내용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미지로 남아 있는 소설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살기 위해 스파게티를 삶았고 스파게티를 삶기 위해 살았다는 말이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아무 의미 없이 먹는 스파게티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스파게티소스가 희망이라니. 대기업에서 만든 스파게티소스밖에 모르는 내게는 생소한 표현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나는 스파게티를 계속 삶았다. 그건 마치 무엇인가에 대한 복수 같기도 했다. 배신한 애인이 보내온 낡은 연애편지 다발을 난롯불 속에 집어넣는 고독한 여자처럼 나는 스파게티를 계속 삶았다.
이 문장을 읽으면 하루종일 가스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혼자 먹을 음식을 진지하게 만드는 사람. 배신한 연인이 보내온 연애편지를 태우는 여자는 고독할까? 쓸쓸할까? 씁쓸할까? 그런 마음으로 만든 스파게티의 맛은 또 어떨까? 진지하게 스파게티에 대해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남편은 일찍 출근했고 집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십 대 아이 둘과 9살 막둥이가 뒹굴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누군가 커피 한잔만 타 줬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축 처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엄마라는 옷을 입고 있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갑자기 막둥이가 오랜만에 소떡소떡을 먹고 싶다고 했다. 방에서 꼼짝 안 하던 큰 딸이 난 스파게티. 하고 주문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들은 둘 다 좋아다.
막둥이는 먹는 데 진심이다. 말을 꺼낸 순간부터 배가 고팠는지 부엌에 들어와 재료를 꺼내달라고 한다. 자신이 꼬치에 끼우겠다며. 나는 응차. 하며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어제 시장을 봐서 든든한 냉장고 문을 열고 재료를 꺼냈다.
대기업에서 파는 소스와 사은품으로 달려 있는 스파게티면을 분리해서 면을 삶았다. 하루키처럼 타이머를 설정하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쳐다봐야 하겠지만 물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대충 한다.
그 사이 꼬치를 다 끼운 막둥이가 옆에 온다. 잘 삶아진 면을 소쿠리에 받쳐놓고 둥근 프라이팬을 꺼냈다. 양파를 잘게 썰어놓고 대추방울토마토를 으깨듯이 썰어서 넣었다.
기름에 볶다가 토마토가 묽어질 때쯤 소스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삶은 면을 넣는다. 골고루 젓는다. 냉동실에서 치즈 두 봉을 꺼내고 탁탁 쳐서 뭉친 것을 푼다. 스파게티 위에 골고루 뿌리고 불을 줄인다. 뚜껑을 덮고 치즈가 녹을 때까지 기다린다. 옆에서는 소떡소떡이 익어가고 있다.
물론 하얗고 크고 가운데가 오목한 스파게티 접시가 세 개 있다. 있지만 꺼내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 치즈가 올려진 스파게티를 보여준다. 제가 먹을 만치 앞접시에 뜨고 가는데 세 명이 은근 경쟁이 붙어서 서로 많이 가져가려고 한다.
큰 딸은 떡떡 떡떡이다. 아들은 쏘쏘쏘떡이다. 막둥이는 쏘떡쏘떡이다. 나는 쏘떡쏘떡쏘다. 소시지가 하나 남아서 끼웠다고 한다. 네 사람이 먹는데 취향이 제각각이다.
그렇게 오늘 점심도 잘 먹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문득 하루키의 스파게티는 정갈하고 멋스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하다 말고 책장에서 하루키책을 꺼내 읽었다. 스파게티로 배가 부른 채로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이 세상이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휴일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뭘 하는지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