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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ug 10. 2023

제주토박이의 제주 관광객놀이


8월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로 관광객놀이를 했다. 제주토박이인 우리 가족은 떠나고 싶을 때 이벤트처럼 짐을 싼다. 23년 여름방학은 여행일정도 물놀이일정도 잡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헬스하고 지쳐서 누워 있는 동안 세 남매는 에어컨 틀어 놓고 하루종일 공부하고 놀았다. 나는 그것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아이들이 안쓰러웠나 보다. 폭풍검색을 해서 숙소를 잡았다. 하필이면 태풍이 온다는 날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는 게 아니어서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일단 출발하고 가서 날씨가 나쁘면 집에 오자. 하는 마음으로 짐을 싸고 서귀포로 출발했다.




관광객놀이에 빠지면 안 되는 전통시장탐방하기. 서귀포올레시장에서 어렸을 때 먹었던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서귀포올레시장, 모닥치기떡볶이, 제주도민의 관광객놀이, 새로나분식

여고시절 서귀포번화가에 있는 매일시장 떡볶이를 먹기 위해 종종 자율학습을 땡땡이쳤다. 시장 안 구석에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먹었다. 모닥치기는 떡볶이보다 비쌌다. 밑에 바삭한 김치전을 깔고 고구마와 김말이와 오징어튀김을 올린다. 납작 만두도 있다. 옆으로 김밥 한 줄을 놓고 떡볶이를 위에다 살살 붓는다. 적당한 국물과 잘 익은 쫄깃한 쌀떡볶이, 어묵을 먹는다.




제주시에 살면서 제일 그리운 것이 바로 서귀포떡볶이였다. 제주시떡볶이의 떡은 큰 가래떡을 잘라서 만들었다.  작고 가느다란 쌀떡이 그리웠다.  유일하게 차가 있는 선배에게 부탁해서 서귀포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오곤 했다.




20년 만에 간 서귀포올레시장은 내가 생각했던 재래시장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제주시동문시장보다 훨씬 넓고 쾌적하다며 감탄했다. 잘 정돈된 점포들은 깨끗하게 보였다. 길도 넓어서 복잡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길 가운데 벤치들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게 인상 깊었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벤치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가만히 보니 가게에서 산 음식들을 앉아서 먹고 싶었다. 나도 먹고 싶은 게 많았지만 오늘은 모닥치기를 먹기로 해서 꾹 참았다.



서귀포올레시장, 모닥치기떡볶이, 제주도민의 관광객놀이, 새로나분식

1991년부터라니 여기가 내가 먹었던 곳이 맞나 싶었다. 세련되게 변한 올레시장에 맞춰 떡볶이가게도 진화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약간 불편한 플라스틱의자가 떡볶이와 어울렸다. 아이들이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고 해서 모닥치기 L과 김밥 한 줄을 시켰다.




그런데 아이들이 떡볶이가 나오자마자 의자를 바짝 붙여 앉는 게 아닌가. 그래, 모닥치기를 보면 안 먹을 수가 없지. 흐뭇하게 웃는 사이 자기 입맛에 맞는 것들을 쏙쏙 빼가는 아이들이었다. 남편님도 아무 말 없이 잘 먹는 걸 보니 입에 맞았나 보다.


제주시 떡볶이보다 맛있지?

고개만 끄덕인다.



맨 밑에 있는 김치전을 찾았다. 떡볶이국물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다. 딱 내가 원한 맛이었다.  자극적이고 몸에 엄청 좋지는 않지만 맛있었다.

다음에는 두 개 시켜야지




두 번째 관광객놀이. 제주도민의 제주특산품 사기

서귀포올레시장, 모닥치기떡볶이, 제주도민의 관광객놀이, 새로나분식


올레시장에서 제일 크다는 기념품가게에 들어갔다.  입구에 뜬금없이 앉아 있는 피노키오.


"완?"


센스가득이다.


다 둘러보고 제일 맘에 드는 것 만원 이하로 딱 하나씩만 사기로 했다.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보고 있으면 그때가 생각나는 것이 기념품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서귀포올레시장, 모닥치기떡볶이, 제주도민의 관광객놀이, 새로나분식


큰 딸은 돌고래수첩을 아들은 감귤모자를 샀다. 막둥이는 소원팔찌와 드림캐처 두 개를 사고 싶은데 11,000원이라며 고민했다. 어딜 가서 뭘 사든 막둥이는 살짝 초과한다.  가끔 엄마가 사 줄 것 알고 작전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한참 올레시장을 돌고 나니 목이 말랐다. 주차장에 가기 전에 작은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커피와 에이드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중에 주위를 둘러봤는데 <만남의 광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1호 광장이나 동명백화점에서 자주 만나곤 했었다. 요즘 아이들은 여기서 만나려나. 반가운 마음에 인증숏을 찍었다.


여행은 짐을 쌀 때부터 출발할 때까지가 제일 신난다.



익숙하지만 조금이라도 낯설게 느껴지면 한껏 소리를 지른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제주도민이 제주에서 관광객놀이를 할 때  필요한 자세다.


숙소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흥이 폭발했다. 제주에 살아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산이든 바다든 한시간안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썬크림을 잘 바르고 썬글라스 하나만 챙기면 우린 방금 내린 관광객처럼 관광지를 돌아다닌다. 현지인맛집에는 가지 않는다. 무조건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속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신기한 척 한다.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무언의 약속이다.


따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제주 토박이의 재미있는  관광객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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