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Aug 21. 2023

촌에 아이, 시에 아이

가끔은 놀며 삽니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제주시에서 제일 큰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1년을 다니고 전학 갔다. 긴 머리에 원피스를 입은 나는 시골학교에서 도드라졌다. 우리 반은 25명에서 28명 정도였다. 학 학년에 한 반이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밭에 갔다. 우리 집은 밭도 과수원도 없었다.


온 세상이 놀거리였다. 가을에는 길가에 늘어선 과수원에서 귤이 익어갔다. 손만 내밀어 귤을 따 먹곤 했다. 여름에는 삼동을 따러 다녔다. 삼동은 블루베리처럼 생겼는데 더 달고 시었다. 많이 먹으면 입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유채꽃이 피면 노란 옷을 입고 들을 뛰어다녔다


6학년 때 일이었다. 친구와 학교가 끝나서 집으로 가는데 군인 아저씨가 길을 물었다. 동네 사람이 아니었다. 손짓으로 가르쳐주다 안 되겠다 싶어서 따라오라고 했다. 제법 먼 길이었다. 친구와 나는 군인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군인아저씨가 고맙다며 아이스크림을 사 줬다. 


집에 와 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다른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베짱이가 군인이랑 밭으로 가는 걸 봤다고 말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를 찾으러 다녔다고 했다. 엄마가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아무나 따라가면 어떡하냐고. 무서운 줄도 모르고. 등이 따가웠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깔깔대며 웃었다


또 하루는 친구네 오빠가 맥심커피통 하나를 주며 여기 삼동을 따서 채워오면 오천 원을 준다고 했다. 나와 친구 세 명이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삼동나무는 가시가 있다. 수풀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맥심커피통은 생각보다 컸는지 아무리 따도 삼동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터벅터벅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 가던 친구가 스톱을 외쳤다.


버스 정류장에 교감선생님이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르고 깐깐한 선생님이었다. 주말인데 왜 교감선생님이 있지? 궁금했다. 뭔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이 줄을 맞춰 엎드리다시피 숨었다. 잘은 몰랐지만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있었다. 그때 친구 한 명이 방귀를 뀌었다. 내 얼굴바로 앞에서. 나는 으악 소리를 질렀다. 친구들이 내 입을 막았다. 순식간에 일어섰다 앉았다. 교감선생님이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쳐다봤다. 마침 버스가 왔다.


친구들을 만나면 아무리 말을 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시골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혼을 하고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참고 견딘다는 말이다. 친구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름에 밭에 가서 일하는 것보다는 낫지.  그러니까 나는 보릿단을 옮기는데 그 밑에 뱀이 있었다니까. 나는 감자밭에 약 하는데 농약줄이 감자꽃을 건드렸다고 아빠가 돌멩이를 던졌잖아. 그걸 다 견뎠는데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살아 견디고 있다. 나도 친구들도.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며 잘 놀았다. 


신제주보쌈


너무 열심히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12시까지 들어오기로 약속했는데 12시 20분에 들어왔다. 남편님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문을 열어줬다. 문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 옆에 가서 잤다. 다음 날 하루 종일 남편이 말을 하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오늘은 칠석불공 첫날이다. 절에 가는 날이다. 8시 30분에 출발하면 충분했다. 10시 불공시작이니까. 하지만 시어머니는 새벽부터 전화를 하셔서 닦달을 하셨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 구시렁거렸다. 대꾸할 힘도 없었다.



 9시가 되기 전에 절에 도착했다. 그제야 오늘은 차가 덜 막혔네. 말씀하셨다. 20년째 시어머니와 어색한 사이다. 할머니들 틈에 앉아 부처님께 절했다. 

토요일 하체 운동한 걸 잊었다. 절할 때마다 허벅지가 당겼다.  속에서 뭔가 올라왔다. 108배를 겨우 했다. 불공이 끝나고 점심공양을 하는데, 냉국만 두 번 떠다 먹었다. 속에 뭔가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술 마신 다음 날 절에 가는 건 역시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토박이의 제주 관광객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