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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로망사이

넷플릭스 드라마 DP2 시청후기

by 레마누


로망 ([프랑스어] roman) [명사]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이상.




그것은 로망이었다. 한준호 상병이 탈영병이 되는 순간 로망이라는 것을 알았다. DP1을 재미있게 봤다.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얘기가 있다. 군대애기, 축구애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그런데 나는 그런 얘기가 싫지 않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심이 많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세상 속 이야기가 궁금했다. 무엇보다 정해인과 구교환, 손석구가 나오는데 안 볼 이유가 없었다. 배우나 감독을 보고 드라마를 선택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 세상은 단순했다. 나쁜 놈은 딱 봐도 나쁜 놈같이 생겼다. 목소리는 음흉하고 검은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런 나쁜 놈을 때려잡는 건 어디선가 나타나는 영웅이었다. 슈퍼맨일 수도 있고, 가제트형사일 수도 있었다. 검은 별이 언젠가는 복수한다고 이를 갈아도 코웃음을 쳤다. 우리에게는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있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선과 악이 불분명해졌다. 누가 선인지 악인 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모호해지고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 있다. 우여곡절을 겪고 갖은 고생을 하며 도망치던 남자가 수녀원에 숨어들었다. 수녀님들은 남자를 안심시켰고, 남자는 비로소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남자는 경찰에게 끌려갔다. 남자를 신고한 사람은 가장 친절했던 수녀님이었다. 남자에게 동정심을 가졌던 나는 놀란 남자만큼이나 배신감을 느꼈다. 제목은 잊었지만 그때의 충격만은 생생했다. 그때 생각했다. 수녀님은 악인인가? 아닌가? 그 후부터 보이는 세상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간접경험으로 알아갔다. 순진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2는 군무 이탈 체포조(D.P)인 준호와 호열의 이야기다. DP1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더 큰 부조리에 마주한 두 사람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탈영을 하고, 거대 악에 맞서는 한준호상병의 행동은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로망이다. 불의에 맞서는 인간은 적어도 슈퍼맨처럼 날 수 있는 망토를 가졌거나 배트맨처럼 강력한 무기를 지녀야만 했다. 한준호상병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되려 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도덕책에서 만날 수 있는 불의에 맞서는 인간은 멋있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외로운지, 고된 삶을 사는지는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된다. 그래서 마지막 회 제목이 <내일>이다.




답이 없는 질문에 계속 부딪힌다.




"그게 뭐예요? 그런 건 다 말장난이잖아아요."


"여기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데니까"


"저는요, 그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너무 싫어요. 답이 안 나오는 질문에 저는 우리 가족은(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군대를 모른다. 상상도 할 수 없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해 준 애기만으로 얼추 짐작해 볼 뿐이다. 남편은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만일 우리 아들을 저런 곳에 보내야 한다면 고민이 될 것이다.




"이제 그만하자. 할 만큼 했어"


"할 만큼 했었습니까?




"답은 간단하죠. 우리는 명령을 기다립니다. 사령부의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령부의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명령만 기다리며 방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든 이런 현상 때문에.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왔습니다. 그런 나라를 위해서.


그렇다면 나라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죄송해하지 마세요. 우리한테는 이제 내일이 더 중요해요."




"나는 이곳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고, 많은 이들과 헤어졌다. 그들은 나를 기억할까. 나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어렸을 적 세상은 단순했다. 영웅은 멋있고 악당은 나쁘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자유의지를 갖고 책임의식을 지닌 사람이 멋있다. 참고 버티는 자가 영웅이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다. 불평과 불만으로 말이 많고, 온갖 짜증을 얼굴에 드러내는 사람은 하수다. 껴안고 간다. 말없이 그런 사람이 고수다.




따라서 이 글은 로망에서 시작해서 로망으로 끝난다. 그런 사람이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기 때문에 로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만나고 싶은 것 또한 로망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옛날이야기의 힘이 부디 사라지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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