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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통터치

언제 닥쳐도 당황하지 않기

by 레마누

바통터치

-자작시-


엄마의 죽음만큼이나 아픈 엄마의 서랍장

목주름처럼 늘어난 채 여기저기 정신없는 속옷들을 개며

왠지 엄마가 부끄러워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은 엄마 덕분에

4남매는 싸울 일이 없었다

남긴 게 없으니

나눌 게 없고

나눌 게 없으니

다툴 일이 없었다

눈만 마주치면 울면서 매일 우리는 서로를 안고 잤다


3자 이마, 짙은 눈썹, 속쌍꺼풀, 조개손톱, 처진 가슴

신협 빛 3천만 원

엄마가 동생 몰래 내게 남겨준 것.


짧고 간결했던 엄마의 바통터치




어제저녁 늦게 친구 어머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에 오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친구였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의 병원비를 혼자 떠 앉게 되었다며 한숨을 쉬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요양원에 누워 게셨고 그동안은 오빠와 반반씩 부담을 했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친구의 짐이 덜어졌구나 싶은 마음이 앞섰다.


오래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친구는 대구에 있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서 못 내려온다며 미안하다는 말만 몇 번을 반복했다.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하더니 생각보다 너무 많은 돈을 보내왔다. 아무리 고등학교 때 제일 친하게 지냈다지만 사회에 나간 후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친구였다


서로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다. 남편은 친하다면서 왜 그러냐고 했지만 우리 둘은 알고 있다. 마음으로는 서로를 진정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걸.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래서 일 년에 한 번만 만나도 되는 친구였다. 5년 만에 만나도 되는 친구였다. 겨울에 오빠의 장례식을 치르러 내려왔다가 만났는데 오늘 다시 만나게 됐으니 본의 아니게 일 년에 두 번 만나게 됐다



친구는 제주도에 살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대구 사람과 결혼해서 그곳에 뿌리를 내려 살아야 하는데 제주 생각만 난다고 했다. 오빠도 엄마도 없어진 친구에게 나는 제주에 오고 싶은 이유가 될까?


오늘 풍물연습하러 간 아이들이 돌아오면 친정엄마 산소에 갈 예정이었다. 화요일 제삿날에 가지 못하니 산소에 가서 조촐하게나마 상을 차리고 절을 하고 오려고 했다. 어제 시장도 봐 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요구르트와 요플레도 샀다.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크림빵은 내려가는 길에 살 예정이다.


제주시에서 엄마 산소까지는 한 시간이 걸린다. 산소에서 다시 서귀포까지 갔다 제주시에 오면 하루가 다 갈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다.


죽은 엄마를 추모하는 것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할 일을 하며 어른이 된다. 살아가는 건 살아 견디는 것이라는 걸 마음속에서 되뇌며 그렇게 사람을 보낸다. 그리고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외롭다고 생각하다가도 혼자가 아님을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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