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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밤의 꿈

-자작시-

by 레마누

엄마가 돌아가셨다

장마가 끝나고 기록적인 폭염에

기상 캐스터가 민소매원피스를 입고

활짝 웃었던 날

마늘밭에 닭똥비료를 뿌리던 엄마는

비료포대와 함께 날아가 전봇대에 부딪쳤다

나는 여름이 되면 맥주를 마신다

쌀을 씻으며 한 잔

핏물 뺀 갈비를 냄비에 넣으며 한 잔

압력솥의 추가 돌아갈수록 손은 덩달아 바빠지고

얼굴이 벌게진다

태국여자가 입으로 뜯은 매운 닭발을 오도독 씹으며 헤헤거린다

여름밤은 길고 덥고 습하고 엄마는 없고

아이들은 장마 끝난 나무처럼 자란다

몇 번의 여름이 지나가고

맥주로 채워진 배에서 물소리가 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세상은 네모가 됐다



초복 다음 날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아빠에게 나중에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빠의 말이다. 아빠는 얼른 갔다 와서 쉬라고 말하고 자신은 과수원에 농약을 뿌렸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냉수 한잔 들이켜고, 옆집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가서 마늘밭에 닭똥비료를 뿌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거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7시. 옆집 아저씨이자 아빠의 사촌 형제인 진아 아빠는 초록색 신호를 받고 출발했다. 트럭뒤 짐칸에 비료포대를 깔고 앉아 있었다. 동산에서 스타렉스가 무서운 속도로 내려와 트럭 뒤를 받았다. 48킬로의 엄마가 비료포대와 함께 날아갔다. 정확한 사건파악을 위해 그 시각 그 장소에 있던 차들을 수배했고,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나는 임신 5개월이었다. 엄마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빠와 남편이 해 줬다.


엄마를 죽게 한 스타렉스의 운전자는 음주운전에 신호위반이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이었다고 한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일터로 가는 일용직이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에 나는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엄마는 내게 하늘이고 전부였다. 나는 한 번도 엄마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않고 살았다. 오천 원짜리 티를 입어도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고 말하곤 했다. 상장을 받은 날에는 학교에서 15분 걸리는 동산 위에 있는 집까지 숨도 안 쉬고 뛰어갔다.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엄마가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하면 날아가고 싶었다. 아무리 밖에서 힘들어도 엄마한테 말하고 나면 기분이 풀렸다. 누워 있는 엄마를 뒤에서 꼭 안고 엄마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점점 작아져서 내 품에 다 들어왔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었다


결혼하고 7년 동안 아이가 없을 때 나보다 더 속상해했던 것도 엄마였다. 전국에 있는 유명한 한의원을 다 돌아다니며 큰 딸이 행여나 아이를 못 낳아 시댁에서 고생할까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없는 살림에 한약을 해서 먹였다. 7년 만에 딸을 낳았을 때 낄낄대며 너 이제 큰소리 빵빵 치라고 했던 것도 엄마였고, 둘째가 아들이라는 소리에 내가 발 뻗고 자겠다고 웃었던 것도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가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느님은 계산을 정확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줘야 했다. 나는 그렇게 엄마와 아들을 바꿨다. 그 아들이 11살이 되었다


이맘때쯤 날이 선선해지면 엄마제삿날이 다가오는구나 한다. 아무리 덥다가도 구름이 끼고 비가 온다. 황망하게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다 보일까 구름이 가려준다. 이래저래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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