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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차리다 문득

덥고 지치고 맥주는 맛있고

by 레마누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존재다

무한한 세상을 품고 있지만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발을 디딛는 순간 사라진다

하늘이 틈을 벌리고 손짓한다

내가 보는 것이 그것일 때 숨이 막힌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라도 된 척하느라

힘 준 어깨를 두들기는 당신

알았는가. 나를.

그렇다면 부디 편히 쉴 수 있게

어깨를 빌려주렴. 당신만이 나를 잠들게 할 것이니.




생각이 하루를 지배하는 날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부딪쳐 시끄러운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저는 가만히 있습니다. 번개가 치면 숫자를 셉니다. 어디선가 번개소식을 듣고 달려올 천둥을 기다립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만 사실 비 맞는 게 그리 두려운 일은 아닙니다. 물구덩이를 괜히 디딛는 건 8살 막둥이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아주 엄격하고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주지만 아주 가끔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되고 싶습니다.


여든 살 할머니가 젊은 총각의 웃음에 반해 과일가게를 매일 찾아갔다는 애기는 추문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도 좋은 건 좋은 겁니다. 세상 다 산 듯이 험한 말을 찍찍 내뱉다가도 수줍게 얼굴 빨개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저는 좋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면 예뻐지고 가슴이 뜁니다. 제가 당신에게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면 당신은 반성해야 합니다. 설렘이 사라진 관계는 가면쓰고 웃는 것처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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