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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Sep 20. 2023

초등학교 공개수업후기

눈물이 많은 건 엄마 닮은 거예요

지난주에 초등학교 공개수업이 있었다. 10시에 2학년수업을 참관하고, 끝나자마자 4학년교실로 이동했다. 막둥이는 전날 잠까지 설치며 걱정했다. 엄마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발표 안 해도 뭐라 하지 않기로 확답을 받았다. 정작 수업시간에는 발표도 잘하고 아이들과도 밝게 지내는 모습에 안심하고 돌아섰다. 작년 공개수업에서는 반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발표를 안 했던 막둥이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괜찮다.



쉬는 시간에 부지런히 이동했지만 4학년 수업에 조금 늦었다. 이미 학부모들로 꽉 찬 교실뒤쪽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들이 있는 쪽에 서 있었더니 친구가 아들의 등을 쿡쿡 찌른다. 아들이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씩 웃고 바른 자세로 앉았다.



4학년 공개수업은 국어시간이었다. 전날 미리 개요를 작성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편지지를 나눠주며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아이들이 편지를 쓰는 동안 학부모들은 교실뒤쪽에서 이것저것들을 보며 뻘쭘하게 서 있었다. 



30분이 지나고 선생님이 앞에 나와서 발표할 사람?이라고 하자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손을 든 학생들은 모두 시키겠다고 하시며 한 명씩 나오라고 했다. 어머님이 앞으로 나오길 원한다면 어머님을 부르라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의자에 앉아 있고 아이들이 그 앞에서 편지를 읽었다. 



마치 우정의 무대처럼 눈물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의 편지는 구구절절했고, 목소리는 떨렸으며 그걸 보고 있는 우리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한 남학생이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그야말로 진심이 담긴 편지내용에 교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나는 손수건도 휴지도 없어서 안경닦이로 부지런히 눈물을 닦았다. 부모님의 사랑을 잘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내가 아팠을 때 고생한 엄마에게 고맙다고 하는 장면에서 엄마들의 눈물보가 터졌다. 



24명의 아이들 중에 10명이 앞에 나가서 부모님들과 감동의 장면을 연출했다. 나도 살짝 기대하고 있었다. 아들이 손을 들고 엄마를 부르면 나가기 전에 옆에 엄마에게 동영상을 찍어 달라고 말해야지. 생각했다. 아들은 끝내 손을 들지 않고 수업이 끝났다.



선생님이 발표를 하지 않은 친구들은 직접 편지를 전해 주라고 하셨다. 아들이 편지를 들고 일어섰다.

 벌게진 얼굴, 퉁퉁 부은 눈.



잊고 있었다. 아들이 얼마나 눈물이 많은 아이인지. 어렸을 때부터 엄마소리만 들어도 울었던 아이였다. 아들이 아이들 앞에서 내게 편지를 읽어준다면 눈물모자인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꺼이꺼이 울었을 것이다. 


편지를 내밀기도 전에 가슴에 안겨 우는 아들을 안고 나도 울었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하며 울었고, 아들은 미안해 미안해하며 울었다. 



발표를 안 해도 좋다. 정말 괜찮다. 존재자체로 감사하다. 한참 울다 눈물을 닦아줬다. 가벼운 농담으로 아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돌아섰다.



아들의 반에는 거칠고 강한 남자아이가 있다. 도우미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옆에 앉아서 통제를 하지만 안 보일 때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때린다고 한다. 등치가 크고 힘도 세서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함께 어울려 공부하다가도 제 멋대로 행동한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을 때리는 민수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딱 두 명이라고 한다. 철수는 1학년때부터 민수와 같은 반이었는데 항상 짝꿍이 되어 민수를  챙겨줬다. 친구들이 모두 민수와 짝꿍이 되는 걸 싫어하면 철수가 기꺼이 민수의 짝꿍이 된다고 했다. 



민수가 좋아하는 친구는 철수와 아들이다. 민수의 표현에 의하면 아들은 민수를 삼촌같이 돌봐준다고 한다.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서도 고운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니 기분이 좋았다. 4학년 남자아이들 틈에서 마음고생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이들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철수와 아들은 제일 친한 친구다. 아들의 성향을 걱정하는 내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자기 성향에 맞는 아이들을 잘 찾아간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들은 지금 자신만의 세계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행동하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고 있다. 속이 꽉 찬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공개수업에서 발표를 하지 않아도 좋다.  엄마걱정보다 훨씬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마운 날이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나를 똑 닮은 아들이다. 

임신했을 때 내가 너무 많이 울어서 아들이 눈물이 많은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할 때가 있다.



엄마라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자꾸 미안한 것, 잘 못 했던 것만 생각난다. 고맙고 감사한 것투성이다. 


마음은 안 그런데 자꾸 못된 말이 나온다. 따라서 이 글은 완벽한 반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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