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별 생각을 다합니다
양배추 국 -투르게네프-
시골 농사꾼 과수가 마을에서도 첫째가는 일꾼인 스무 살짜리 외아들을 잃었다. 이 마을의 여자주인 마나님은 노파가 심난해한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장례식 날 과수집을 찾았다.
과수는 집에 있었다.
과수는 오두막집 한가운데 탁자 앞에 서서, 오른손(왼손은 맥없이 늘어뜨린 채)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검정 그을음이 낀 항아리 밑창으로부터 건더기 없는 양배추 국을 떠서는 한 술 두 술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과수의 얼굴은 핼쑥 빠져 있고 까맸다.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고 퉁퉁 부어 있었다. 하지만 과수는 교회에서 하던 것처럼 꼿꼿한 자세였다.
"어쩜!"하고 마나님은 생각했다 "이 판국에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다니... 저 사람들은 도대체 저렇게 무딘가 보아.!"
마나님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몇 해 전 자기가 난 아홉 달 되는 딸을 잃고 슬픔에 겨워 페테르부르크 교외에 있는 멋쟁이 별장을 빌리기로 한 것을 포기하고 여름 내내 시내에서 보냈던 것을! 과수 노파는 여전히 양배추 국을 들이켜고 있었다.
"다치아나!"하고 마나님은 말했다. 마나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끝내...
"정말이지! 난 놀래 버렸어! 죽은 아들을 염두에도 두지 않는 것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냔 말이에요. 식욕이 동한단 말이오. 어떻게 그 양배추 국이 목구멍을 넘어갈 수 있담!"
"내 아들 바이샤는 죽었어요."
과수 노파는 나직이 말했다. 그러고선 애통스런 눈물이 노파의 오목 패인 두 뺨을 흘러내렸다.
"내 신세도 이제 끝장이 난 겁니다.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아요. 생매장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양배추 국은 버릴 수가 없어요. 소금이 들어 있거든요."
마나님은 "맘대로 하지"하는 투로 어깨를 으쓱하고 가 버렸다. 마나님한테 소금은 너무나 싼 것이었다 (19878년 5월)
얼마 전에 읽은 조지오웰의 <1984년>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냄새의 대명사로 양배추 삶는 냄새라는 대목이 나왔다. 문득 예전에 그와 비슷한 느낌의 글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머릿속에만 있는 기억을 찾아내는 데는 네이버 지식인보다 딱 이틀 늦었다.
알고 싶은 것을 바로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뭔가 있는데 그게 뭐지? 하루종일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날 때의 희열은 따라올 수가 없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러시아작가다. 나는 러시아문학을 사랑한다. 6개월 동안 겨울이 지속되는 곳에서 한없이 어둡고 추운 곳에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지곤 한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에는 1890년대의 러시아가 담겨 있다. 읽다 보면 지금의 고민과 힘듦이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은 하층민이나 상류층이나 별반 없지만, 소금의 값은 서로에게 다른 의미가 된다.
어제는 추석전날이다. 10시부텉 4시까지 큰 형님과 시어머니와 함께 추석음식을 만들었다. 20년째 하다 보니 알아서 척척 만들어낸다. 시어머니가 먼저 일어나서 목욕탕에 갔다. 큰 형님과 나는 시어머니의 생신상을 차렸다. 음력 8월 14일은 시어머니의 생일이다.
제일 친한 친구의 생일은 음력 8월 16일이다. 엄마의 생일은 음력 8월 17일이다. 언젠가 추석전후로 생일인 사람은 일복이 터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세 사람에게는 이 말이 통한다.
친구는 시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작은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추석명절을 지낸다. 음력 16일은 큰아버지의 제사다. 친구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생일날 얼굴도 모르는 시댁의 큰아버지제사상을 차리는 친구는 그래도 괜찮다고 말을 한다.
엄마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추석 때 남은 음식에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파티를 하곤 했다. 시골에서 추석은 제일 바쁜 시기다. 그때 아기를 낳은 산모가 제대로 몸조리를 했을까 의문이다. 어쨌든 추석이 끝났다. 친구와 커피숍에서 두 시간 정도 추석뒤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뭐가 됐든 고생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님은 언제쯤 내 소원을 들어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