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아배 생각
-안상학-
뻔질난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니, 오늘 외박하냐?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야, 어디 가노?
-예....바람 좀 쐬려고요.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스물여덟이 되도록 결혼할 생각을 안 하던 나는 주말마다 엄마네 집에 내려갔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거리에는 엄마와 아빠가 바깥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방은 따뜻하고 잠이 잘 왔다.
하루는 말없는 우리 할아버지. 여든이 넘어도 허리가 꼿꼿하고 매일 수염을 깎고, 여름이면 하얀 모시옷만 입던 울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결혼은?
-안 해
-왜
-사람이 없어
-너 지금 몇 살이니?
-스물여덟
-너 스물다섯 때는 금메달, 스물여섯은 은메달,
스물일곱은 동메달. 스물여덟은 똥메달인 거다.
너는 아니라고 해도
-할아버지 요즘 그런 말하면 큰일 나.
-아무나 만나서 결혼해라. 나 살았을 때. 팔하나 없어도 눈하나 없어도 좋으니 아무나 데려와봐. 내가 봐줄 테니
울할아버지 마지막 소원은 큰손녀딸이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날 문상 온 할아버지의 사촌동생이 상복 입은 나를 보고 남편을 소개해줬다. 남편과 만나기로 한 전날. 꿈을 꾸었다.
할아버지가 커다란 버스에 타고 있었는데 나는 반가워서 할아버지 부르며 따라갔다. 할아버지는 버스에 오르며 내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참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유머를 좋아한다. 해학과 유머가 있다. "아배 생각"을 읽다 보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말들이 생각난다. 거칠지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참 재밌는 말들이다.
재미만 주고 끝나면 그저 그랬을 "아배 생각"은 마지막 연에서 그만 울컥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꿈에라도 한번 나와 주시지. 왜 감감무소식인지 남은 사람은 그저 아쉬운 따름이다. 고향이 그리운 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덩달아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방울방울거리면 가만히 앉아 먼 곳만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