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공기총이 있었다. 9인승 코란도를 타고 침을 질질 흘리는 도사견과 함께 꿩사냥을 다녔다. 아빠는 자식들에게 용돈 한번 준 적이 없었다. 아빠는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았다. 동네 사람들은 아빠를 상남자라고 했다. 8명의 식구를 건사하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는 공기총으로 사냥한 꿩을 집에 왔다. 때론 우릴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조수석 쪽에 꿩이 보이면 아빠는 조용히 차를 세우고 "가만있어"라고 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 앞으로 공기총이 놓였다. 아빠가 꿩을 조준하고 총을 쏠 때까지 숨을 참았다.
막내 동생은 죽어 가는 꿩의 모가지를 비트는 아빠에게 잔인하다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울면서 말했다. 그날 꿩고기를 제일 많이 먹은 것도, 역시 모가지가 제일 맛있다며 쪽쪽 빨아먹은 것도 막냇동생이었다.
엄마가 요리해 준 꿩고기를 먹지 않았다. 돼지고기, 소고기는 잘 먹으면서 꿩고기는 안 먹냐고 묻는 아빠에게 아무 대답도 못했다. 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꿩메밀칼국수집이 있어서 가끔 간다. 그때도 나는 콩국수를 시킨다.
아직도 나는 거미줄에 벌레가 걸려 있으면 거미줄을 걷어 버린다. 가만히 줄을 치고 먹이가 오길 기다리는 거미라는 족속을 마음으로 미워한다. 그런데 왜?
나도 마흔아홉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파닥거리며 줄에 잡힌 잠자리는 굳이 꺼내주면서 하루종일 굶은 채 제 몸을 파내며 줄을 짠 거미는 왜 그토록 징그럽기만 할까. 거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쳐 놓은 거미줄을 걷을 생각만 한다.
나는 아직도 잠자리와 거미와 나와 세상을 알지 못한다. 시인은 알고 있는 걸 나는 아직 모른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려니 목소리만 커진다. 나이가 들면서 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모르는 것들도 존재한다. 어떤 일은 공을 들여야 하고, 어떤 생각은 노력을 해야 이해가 되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만큼 시간을 죽이는 일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