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이규경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뭐?

by 레마누

용 기 - 이규경-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 해요




어렸을 때는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나는 왜 못할까? 였습니다. 쟤랑 나랑 다른 게 도대체 뭐길래 재는 하고, 나는 못 할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뭐 하나 특출하게 잘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은 많아서 칭찬은 듣고 싶었습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고 가며 머리를 쥐어뜯는라 바빴던.



저는 달리기를 못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15명의 여자아이들 중에 제일 컸습니다. 맨 뒷줄에 서 있었는데 그 줄에는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들이 세 명 있었습니다. 운동회 때 네 명이 출발선에 서면 그렇게 떨렸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저는 키가 제일 컸지만 가장 느리게 달리는.



나는 왜 못할까?

바람을 가르듯이 달려가고 싶은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그렇게 우아하게 다리를 놀리고 싶은데, 현실은 머리부터 앞으로 숙이고 인정사정없이 뛰어보지만 언제나 4등.

© jeremy_justin, 출처 Unsplash



딱 한번 운동회 날 달리기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구구단을 맞추는 경기였습니다. 달려가서 구구단이 적힌 카드를 들고 달리다 정답인 카드를 맞춰서 결승선까지 달립니다. 달리기는 잘했지만 구구단을 못 외운 친구들이 정답을 헤매는 사이 1등으로 골인했습니다. 일등을 하고 공책 세 권을 받았는데 그게 왠지 기쁘기도 하면서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던.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데 괜찮다며 그렇게 하면서 수영을 배운다며 바닷속으로 날 밀어 넣던 우리 아빠, 열심히 외웠는데 단어 하나가 틀렸다며 왼손으로 오른쪽 뺨을 잡고, 오른쪽 손으로 내 왼쪽 뺨을 때렸던 웅변선생님.



나는 할 수 없었는데, 할 수 없어요. 못해요 말을 못 하고 꾸역꾸역 억지로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턴가 혼잣말만 하고 있고, 그래도 앞에서는 언제나 모범생인양 괜찮은 양 다 좋은 것처럼 웃었던.




속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미워서 가끔은 손목을 긋고 싶었고, 그래서 명선언니가 이 시를 보내줬을 때 나는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한참을 숨겨 놓고 혼자만 읽은.



마흔몇 살인 지금은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을 합니다. 더 이상 눈치 볼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어서 헤헤 거리며 이건 도저히 못하겠어요. 말을 할 수 있어서 가끔은 나이 먹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명선언니는 추석을 잘 보냈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제게 왜 이 시를 보내줬을까요? 제 속이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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