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것들
보디빌더
- 안주철-
자신을 들여다보는 운동처럼 쓸쓸한 게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거울을 닦고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
거울을 가꾸는 우울한 운동
보디빌더, 위태로운 근육에 경계를 세우고
힘을 차곡차곡 쌓는다
사내의 첫 퍼즐 조각은
사내의 출발은
균형을 감당하지 못하는 저 위태로운 가슴이다
하체보다 상체를 사랑하는 사내의 편벽
쏟아져 버릴 것만 같다. 사내의 생각들.
사내, 거울 앞에서 또다시 가장 자신 있는
포즈를 취하며 거울에 안긴다
거울 밖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사내의 표정에
나는 늘 놀라지만
거울을 사랑하는 운동처럼 격한 운동이 있을까
균형을 상실해 가는 사내의 체격과 힘을 생각하고
사내의 밤일을 생각하고
사내의 마지막 비애는 몇 그램일지 생각하다가도
아, 사내의 근육은 얼마나 눈부시고 튼튼한가
거울 없이 한 발자국도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는
운동처럼 심란한 운동이 또 있을까
보디빌더, 오늘의 마지막 포즈를 눈동자에 새기며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화자는 보디빌더를 보고 있다. 운동하는 보디빌더의 모습은 멋있는 걸 넘어서 뭔가 아련하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느낌이 있다. 화자는 보디빌더의 눈이 거울에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헬스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거울을 가꾸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눈이 나쁜 덕분에 내 얼굴의 잡티를 못 본다. 그래서 피부과에 가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안 보이는 것들을 괜히 들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상대방의 잡티는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새로 생긴 쥐젖까지 잡아낸다. 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다
보디빌더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울을 가꾸는 사람이다.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 빚어내는 조각 같은 몸을 거울로 보며 만족해한다.
거울을 보다 못해 거울 속에 안긴다는 표현에 웃음이 나온다. 진지할수록 더 우습다. 균형을 잃은 상체와 하체. 보디빌더도 어쩌면 눈이 나쁜지도 모른다. 돋보이는 상체만 보이는 것도 같다.
헬스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일주일에 5번 한 시간에서 한 시간 30분 정도 운동했다. PT를 36회 받았다. 선생님이 그날 운동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주면 다음 날 개인연습 때 똑같이 했다.
체중은 변하지 않았다. 식단조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디프로필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건강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평소와 비슷하게 먹었다. 근육이 늘고 체지방이 줄었다. 나는 '근육형 과체중 1단계'다.
처음 헬스장에 갔을 때는 짧고 굵은 내 허벅지가 거울에 오롯이 비치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스쿼트 10개도 못 했던 내가 이제는 바벨스쿼트 40kg를 한다. PT가 끝난 지금은 매일 스쿼트 100개를 하고 운동을 시작한다. 맨몸 스쿼트 50개와 바벨스쿼트를 50개를 하고 있다.
자신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만큼 외롭고 힘든 싸움이 있을까?
아무도 없이 거울 속의 나와 눈 맞추는 운동. 안으로 안으로 고통을 담아내고 밖에서 빛나는 몸을 얻는다. 나의 고통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눌 수가 없다.
혼자 하는 운동은 외롭다. 힘들면 멈추고 싶다. 아무도 보지 않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무게가 늘었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다. 나만 아는 기쁨과 고통 속에서 나는 매일 고뇌하고 만족하고 다짐한다. 90개에서 멈추지 않고 100개를 채웠을 때 성취감은 기가 막히게 맛있다. 목표량을 채우면 나를 아낌없이 칭찬한다. 하루는 힘들고 하루는 뿌듯해하며 오늘도 나는 헬스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