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큰아이가 학교에서 전화를 했다. 친한 친구가 점심시간에 아파서 조퇴를 했는데 독감이라는 것이다. 딸은 머리가 너무 아픔에 영어학원을 어떻게 할까요? 물었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당장 데리러 갔다. 열이 높았다. 영어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병원에 가서 독감검사를 했다. A형 독감이었다. 그다음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주말에 동생들은 풍물대회와 큐브로봇대회가 있다. 옮기면 안 된다.
집에 가자마자 서쪽방에 동생들 물건을 꺼내놓고 이불자리를 마련했다. 우리 집은 애가 셋인데 아직 각자의 방이 없다. 안방에서 다 같이 자고 서쪽방에서 다 같이 공부한다. 아이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저녁에는 전복죽을 끓였다. 어제 선물로 들어온 싱싱한 전복이었다. 내장을 갈아 넣고 푹 끓인 전복죽은 고소했다. 아이가 다 먹은 그릇을 내쳤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죽을 끓이는데 4학년 아들이 갑자기 동그랑땡이 먹고 싶다고 했다. 서둘러 집 앞 마트에 가서 다진 돼지고기와 두부를 사고 왔다. 집에 있는 당근과 양파와 대파를 잘게 썰고 반죽을 치대 동그랑땡을 만들었다. 계란물에 부쳐서 줬더니 한 접시를 먹었다. 남편 거는 깻잎 전으로 만들었다. 남편도 잘 먹었다.
아이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다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나도 잘 먹었다. 진이 빠지기 전에 잘 먹어둬야 한다. 엄마가 먼저 지치면 안 된다. 나는 엄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시골이었다. 병원에 가려면 차를 타고 30분을 가야 했다. 나는 자주 아팠다. 배가 아프거나 감기에 걸렸다. 엄마는 한 번도 병원에 데려간 적이 없었다. 아프면 아궁이때는 방에 누워 있으라고 했다. 내가 누워 있으면 엄마는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땠다. 내가 있는 곳으로 자꾸 불을 집어넣었다. 방바닥은 금세 뜨거워졌다. 이불을 덮어도 뜨거웠다. 이불 두 개를 깔고 배를 바닥에 대고 눕는다. 배는 아픈데 기분은 좋았다. 빙빙 돌던 머리도 괜찮아진 것 같다.
그때쯤 엄마는 김이 폴폴 나는 하얀 죽과 간장종지를 스댕차판에 담고 들어왔다. 심심하고 꾸덕하고 폴폴 잘 끓인 죽이 맛있었다. 간장을 떠서 죽 위에 살살 뿌려 같이 먹다 보면 바닥이 보인다.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으면 엄마가 잘했다며 웃었다.
가끔 죽도 못 먹을 만큼 아플 때가 있다. 그래도 엄마는 죽을 쒔다. 안 먹겠다는데도 이걸 먹어야 낫는다며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 보라고 했다.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고 다시 누우면 엄마도 옆에 같이 누웠다. 배를 문 지러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빨리 나으라고 했다. 종교가 없었던 엄마는 혼자 중얼거리길 잘했다. 그렇게 엄마 옆에서 잠이 든 다음 날이면 몸이 가뿐하고 배가 고팠다. 엄마가 가져다준 하얀 죽을 다 먹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살았다. 아플 때는 밥 안 먹고 잠만 자면서 몸을 추스르고 나으면 잘 먹으면서 안 아프려고 하면서 그렇게 살다 보니 이런 사람이 됐다. 아플 때는 서럽고 힘들다가도 엄마가 건네주는 하얀 죽에 혼자 감동받으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든든한 엄마로. 그게 지금의 나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