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 만에 낳은 딸은 예민한 아이였다. 기저귀가 조금만 젖어도 울었다. 분유를 거부했다. 모유는 잘 나오지 않았다. 유축기로 젖을 쥐어짰다. 새벽마다 깨서 울었다. 안아서 재웠는데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깨서 울었다. 한참을 안고 걷다 지쳐 소파에 걸쳐 앉으면 그래도 깨서 울었다. 내 딸이지만 힘들었다.
장염과 폐렴, 독감과 일반감기를 달고 살았다. 병원에서는 6살만 지나면 좀 덜한다며 나를 달래줬다. 나는 힘들었지만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간절히 바라던 아이였다. 부처님께 108배를 하며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잘 키우겠습니다."수없이 기도해서 온 아이였다. 몸이 잠깐 힘들다고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4살 때 둘째가 태어났다. 무난한 아이였다. 분유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까칠한 큰 아이를 키웠던 나는 그만 무던한 둘째가 너무 신기해서 반해버렸다. 이런 아이도 있구나. 싶었다. 하느님이 나 살라고 하시는구나.
아이가 6살 때 셋째가 태어났다. 육아선배들은 말했다. "셋째는 발로 키운다."라고. 맞는 말이었다. 셋째는 혼자 쑥쑥 잘 컸다. 분유를 먹다 옆으로 툭 던져놓고 잠들었다. 큰아이 때는 그렇게 힘들던 트림시키기도 셋째는 쉬웠다. 몇 번 용트림을 하면 끝이었다. 하도 신기해서 셋째만 들여다봤다.
그 사이 6살 난 큰 딸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신경성방광염에 걸렸다. 5초 만에 오줌이 마렵다고 징징댔다. 마음의 병이었다. 겁이 났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데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러나 싶었다. 상담선생님을 집으로 모시고 우리의 일상을 보여줬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보다 큰 딸에게 신경을 더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큰 아이도 6살 아기였다. 집에 진짜 아이 둘이 있어서 몰랐다. 6살을 16살처럼 대했다. 미안했다. 그다음부터 큰 딸을 아기처럼 돌봤다. 기어 다니는 흉내를 내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리 아기'라고 불러주면 수줍게 웃곤 했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상처는 많이 아물었다.
지난주에 중학생 큰 딸이 독감에 걸렸다. 같은 반 친구에게 옮겼다고 했다. 나름대로 격리를 한다고 했는데 이번 주 월요일부터 아들이 열이 올랐다. 수요일 독감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바통터치를 한 막둥이가 목요일 독감에 걸렸다. 큰 아이만 학교에 갔다. 둘째와 셋째는 열이 올랐다 약을 먹으면 열이 내렸다. 입맛이 없는지 죽을 쒀줘도 안 먹는다. 하얀 밥에 물을 말아서 조금 먹이고 약을 먹였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겨우 일상루틴을 만들었는데 다 깨졌다. 아이들이 아프면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엄마다. 엄마는 무조건 아이들 우선이다. 가지가 많은 나무는 시원하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걸 잊지 않기로 했다. 지금 불어오는 독감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잘 다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