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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Nov 05. 2023

근황토크

예전에 쓴 글인데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5시에 일어나 미지근한 물 한잔과 함께 고혈압약을 먹습니다. 보왕삼매론과 일상발원문을 읽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감사일기를 씁니다.  오늘 할 일을 달력에 적고 책을 읽고 있으면 큰 딸이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와 어깨를 두들깁니다. 가볍게 안아줍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부엌에 들어옵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먼저 말하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참 말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쌀을 씻어서 밥통에 놓고 취사버튼을 누릅니다. 


아침밥을 챙겨주고 학교에 데려다주면 8시 20분입니다. 남편의 아침상을 차립니다. 아이들과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꼭 독상을 받습니다. 가끔 밉지만 대부분 안쓰럽습니다. 손님이다 생각하고 가벼운 아침을 대령합니다.


9시 40분 원두커피를 내립니다. 요즘 운동 갈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챙겨갑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합니다.  러닝머신 30분까지 뛰고 샤워하고 나오면 11시 40분입니다.


같이 운동했지만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철퍼덕 주저앉습니다. 허벅지가 당겼지만 점심을 차립니다. 남편은 짜장이라도 먹자고 하지만 애쓰게 운동하고 와서 밀가루를 먹기가 싫습니다. 최대한 건강하게 상을 차립니다. 남편이 고기 없냐고 묻길래 생활비를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늦은 출근을 했습니다. 1시까지 부엌을 치웁니다.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마트에서 절임배추를 사고 왔습니다.  배추 9 포기 김치를 할 예정입니다. 요즘 점심을 먹으면 잠이 쏟아집니다. 잠깐 누워 있었는데 20분이 지났습니다. 


2시네요. 오후에는 시간이 두 배로 빨리 흘러갑니다. 15분을 걸어 동문시장에 갑니다. 김치양념을 사고 올라옵니다. 내려갈 때는 좋았는데 돌아올 때는 오르막이라 힘이 듭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도착해서 물 한잔을 마시니 2시 45분입니다. 차 키를 챙겨 나옵니다.


3시에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수업을 마친 막둥이가  배고프다며 친구와 사발면을 사 먹었습니다. 옆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하루키소설이라 시끄러운 와중에도 술술 읽힙니다. 3시 40분 방과 후 수업이 끝난 아들이  뛰어옵니다. 


한라서적으로 갑니다. 아들이 읽을 과학책을 사러 갑니다. 아들이 수학단원평가 100점을 맞았다며 책 한 권을 사도 되냐고 묻습니다. 기특했습니다. 그래,라고 했더니 '흔한 남매의 알고 보면 무서운 이야기'라는 만화책을 가져옵니다. 이미 사 주기로 약속했지만 정말 계산하기 싫은 책이었습니다. 심지어 14,000원이나 합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한 장사를 망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4시 20분 큰 딸의 전화를 받고 학교 앞으로 가서 딸을 태우고 수학학원으로 갑니다. 딸을 내려주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고, 절임배추를 씻었습니다. 찹쌀 풀을 쑤고 종이 박스들을 접어서 클린하우스에 갖다 버립니다. 


5시 20분 아들을 유도학원에 데려다주고 옵니다. 6시부터 저녁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한 시간 글을 쓸 예정입니다. 꼭 써야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드라마 <신병>을 보자고 하면 같이 봐야 합니다. 아직은 저보다 아이들이 우선입니다. 9시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김치양념을 할 예정입니다.



결혼초기에 남편과 각자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은 경제활동을 하고, 제가 집안 일을 맡았습니다. 서로의 영역을 정하고, 일절 간섭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시댁과 친정문제도 각자가 알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제게 전화를 걸면 저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알아서 해결합니다. 친정에서 생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름대로 잘 지켜왔고, 큰 불만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을 때 우리 부부는 한번도 싸워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 아이의 부모인 지금은 눈만 뜨면 서로를 공격하기 바쁩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고, 저는 집안일에 헥헥 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가끔 남편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밖에 나가서 돈을 벌고 오라고 했고, 저는 노골적으로 쓰레기라도 좀 버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 부부가 같이 골프도 치고, 헬스도 하는 게 참 보기 좋다고 말을 합니다. 그럴 때나 얼굴을 보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살아져서 그러는 겁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를 탓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숨 쉴 구멍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터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합니다.


오늘 남편이 출근하면서 저보고 그러더군요. 

"너는 이제 나 가면 푹 쉴 거 아냐. 좋겠다."

물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습니다. 시간을 잘 쪼개서 생활하면 됩니다. 하지만 가끔 제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것에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데 왜 하늘 같은 남편님은 언제나 자기만 힘들다고 할까요? 


남편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삼복더위에 밭에 가서 일을 해 봤니? 추워서 손가락이 곱아지는 날씨에 배추밭에서 얼어 가는 배추를 수확해 봤니? 네가 정말 힘든 게 뭔지 알아? 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인간아.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아주 죽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듯 아주 사적이고 사소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만일 이런 제 글이 당신의 마음 어딘가에 와닿는다면 어쩌면 당신도 가슴속에 불덩이 하나 매달아 놓고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뜨겁고 무거운 것을 조금씩 꺼내보세요. 글을 써도 좋고 말을 해도 좋습니다. 안고 살면 제 얼굴만 벌게지는걸요. 이렇게 다 쓰고 나서 퇴근하는 남편에게 저는 환하게 웃으며 말할 거예요.


수고하셨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 거 맞죠?

오늘도 맛있는 저녁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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