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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31. 2023

기우

기우 :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라는 뜻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이르는 말. 

지난주 토요일의 일이다. 그날은 중학교골프모임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회장배 골프대회가 있었다. 회원들 대부분이 참석하는 나름 큰 행사였다. 나는 골프모임에 가입은 했지만 매달 나가지는 못하고 띄엄띄엄 나갔다. 


나갈 때마다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은 아니었지만 동창이라는 이유로 허물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좋긴 하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씩 참가했다. 토요일은 아이들 픽업으로 하루종일 바쁘다. 남편에게 한 달 전부터 부탁을 했다.


예전에는 골프를 치러 가기 전에 김밥을 쌌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 열 줄을 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분식집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밥을 사다 놓았다. 


라온 골프장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네비를 찍으니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먼저 출발한 친구에게 물었더니 평화로로 오면 된다고 했다. 예전에 남편과 같이 갔을 때는 애조로를 이용했다. 잠깐 고민하다 애조로를 선택했다. 거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골프장은 한림 중산간도로에 있었다. 나는 그냥 무조건 서쪽으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네비가 자꾸 경로를 벗어났다고 했지만 자신 있었다. 네비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길은 어느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좌회전 하십시오."에서 나는 직진했다. 경로를 부지런히 재탐색한 네비가 "잠시 후 좌회전하십시오."에서 나는 또 직진을 했다. 


11시 10분까지 집합인데 이미 11시 20분이 지났다. 도착시간을 보니 11시 38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마음을 놔 버렸다. 티업은 12시 10분이었다. 단체사진은 안 찍으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운전했다. 중산간마을을 구석구석 구경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골프장이 나왔다.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내리자마자 물 한잔을 마셨다.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얘기하다 보니 티업시간이 됐다.


사실 나는 이번 골프모임에 가기 싫었다. 이제야 시작했다는 친구들보다 더 못 치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났다. 아무리 친구들과 만나서 치는 명랑골프라고 해서 중간은 해야 하는데 저번 모임에는 꼴찌를 했다. 거기다 모임조도 마음에 안 들었다. 남자 2, 여자 2가 치는데, 순정이가 바로 전날 불참을 알렸다. 손가락골절이 됐다고 한다. 순정이는 나와 친하다. 나는 못 쳐도 순정이랑 놀다 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 동창이 추가됐다. 졸지에 남자 3에 나 혼자 치게 된 것이다.


티샷 장소부터 다르다. 전날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잤다. 심지어 한 번도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창피당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 모든 마음이 합쳐진 게 골프장에 늦은 이유였다.


기우였다. 나는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았고, 남자 동창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카트 앞에 앉아서 캐디언니와 놀았다. 얘들은 뒷좌석에서 내기골프를 즐겼다. 덕분에 전용캐디처럼 많은 도움을 받았다.


라온골프장에서

경기는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됐다. 긴장했는지 초집중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전 스코어가 좋았다. 그제야 한숨 돌리고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후반전에는? 전반전보다 더 잘 쳤고, 나는 그날 최고점수를 기록했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사서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전날 잠을 못 잔다. 생각이 굴러가는 소리가 우주까지 뻗어나간다. 멈출 수가 없다. 한번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저절로 움직인다.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사는지 모른다. 풍선이라면 펑 떠트리며 사라질 텐데 형체도 모양도 없는 것들이 붕붕 떠다닌다. 그런 날엔 애당초 자는 걸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던 일들은 대개 일어나지 않는다. 밤을 새워서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덕분에 다음 날은 잠을 푹 자게 된다. 마음을 졸인다는 건 그만큼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신경을 쓴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말이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럴 때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책을 탁 덮어버리듯 머릿속을 깨끗하게 지워버린다. 물론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다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 나만의 생각이 기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 다음번에는 걱정을 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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