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기로 하자 그렇게 됐다
응원가는 크고 힘차게
전날 밤 잠을 설쳤다. 제발 비가 오지 말라고 비가 오면 어떡하나 걱정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좋았어.
10월 하늘은 위에서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올라가 있다. 쳐다보고 있으면 목이 아프다. 그 하늘 아래 만국기가 휘날린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열 개의 줄에는 온 세상의 국기들이 달려 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지 아이들의 함성소리에 움직이는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오늘은 운동회날이다. 나는 백팀의 응원단장이다.
커다란 나무막대 끝에는 하얀 깃발이 달려 있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날이다
딱딱딱
딱딱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한 발짝을 뗄 때마다 손바닥을 친다. 발은 절도 있고 몸짓은 비장하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백군 이겨라
백군은 백두산의 호랑이
청군은 똥통에 빠진 쥐새끼
이겨라 이겨라 우리 백군 이겨라
보아라 이 넓은 강산에서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면
틀림없이 백군이 이긴다
억세고 억센 두 주먹으로
청군의 얼굴을 갈겼다
뻗었다 뻗었다 뻗었다 뻗었다
청군이 정신없이 뻗었다
따르릉따르릉 전화 왔어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백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지만 응원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 목소리싸움이다. 이기는 경기는 신이 나서 응원하고 지고 있으면 악으로 깡으로 응원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른다. 달리기도 못하고 매달리기도 못하는 내가 운동회를 기다리는 건 오로지 온몸을 다해 우리 팀을 응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은 잘하지 못하지만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볼 때도 가만히 앉아서 보는 법이 없다.
배구경기를 보든 농구경기를 보든 축구를 보든 뭐든 초집중해서 본다.
잘하는 팀보다 지는 팀을 응원한다. 이상한 성격이다. 잘하는 팀은 다들 응원을 하고 있는데 굳이 나까지 응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끌리는 성향이었을까?
언제나 지는 팀을 응원했다. 누구나 진다고 말하는 팀. 상대가 안 된다는 팀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혹시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며 그렇게 응원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한 번도 우승을 해 본 적이 없는 팀들이었다. 기적이 자꾸 일어나면 기적이 아니다. 졌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어쩌면 질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못하는 사람이 한 번은 예상을 뒤엎고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을.
살아가는 일도 언제나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말을 잘하지 못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는 사람들. 수줍어하고 뒤로 물러서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이 좋다.
앞에서 번지르하게 반짝이는 사람에게는 뭔가 거부감이 인다.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작은 것. 초라하고 낡은 것에 눈이 간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다. 크게 성공하지도 못했고 사람들의 선망을 받지도 못했다. 마치 어린 시절 운동회에서 이어달리기를 하는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끊을 때 응원을 멈추고 그 순간을 기억했던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영광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게 내 몫의 삶이다.
한때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주인공도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지켜보는 자, 응원하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다만
내 인생의 드라마 안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나도 작가다.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쓰고 있는 나도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