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하다 보면 잘할 날이 오겠지

생각 없이 그냥 합니다

by 레마누

엄마가 돌아가신 걸 실감한 건 김치가 떨어졌을 때였다. 엄마는 평소에 딸에게 자상하거나 잘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생일을 챙겨주거나 반찬을 해 준 적이 없었다. 농사일로 언제나 바쁜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고추장이나 김치를 갖고 집에 찾아왔다. 철마다 마늘종 장아찌를 만들고, 양파 장아찌를 담가서 갖다 주었다.



엄마의 김치는 어떤 때는 맛있고 어떤 때는 짰다. 짜면 익혀서 김치찌개해 먹으라고 말했다. 어떻게 할 때마다 맛이 다르냐고 하면 할 때마다 상황이 다르니까. 하며 웃었다. 엄마의 김치는 젓갈이 적게 들어갔고, 시원했다. 앉은자리에서 김치 한 포기를 다 먹은 적도 있었다.



나는 김치를 좋아한다. 다른 건 하나도 맞지 않는 남편도 우리 엄마 김치는 좋아해서 하얀 밥에 김치에 계란프라이만 있으면 두 공기는 뚝딱 먹곤 했다. 큰딸도 이유식을 떼고 된장국에 밥을 먹으면서 김치를 같이 먹었다. 우리 집은 김치가 없으면 안 되는 집이다.



그런데 엄마가 없다.

몇 번인가 사서 먹은 적이 있었다. 맛이 있는 김치는 너무 빨리 먹어서 감당하기 힘들었고, 맛이 없는 김치는 익혀서 찌개를 해도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김치를 담그기로 결심했다. 엄마가 김치 할 때 옆에서 도와준 기억을 살리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시장에서 양념을 사 왔다. 친한 젓갈집에서 김치 10 포기 양념이라고 하면 마늘과 생강, 멸치젓갈과 새우젓을 맞춰서 주는데 기가 막히게 딱 맞았다. 나도 그렇게 하기로 하고 동문시장에 가서 양념을 사고 왔다.



문제는 배추를 절이는 것이었다.

혹시 몰라서 처음에는 세 포기만 사다고 소금을 쳐서 절였다. 시어머니가 소금 한 항아리를 사 주셨다. 소금을 마음껏 뿌렸다. 처음 한 김치는 소태 같은 맛이 났다. 남편은 절인 배추를 여러 번 씻어야 한다고 하면서 씻었냐고 자꾸 물었는데 씻긴 씻었다. 소금이 너무 많았다.



두 번째 이번에는 잘하리라 생각하고 배추 6 포기를 사고 왔다. 소금을 그전보다 적게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예전처럼 동문시장에서 양념을 사고 왔다. 그리고 적당히 짜고 잘 절여진 배추에 양념을 하는데 배추가 살아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그냥 양념을 무쳤다.


죽겠지. 언젠가도 저도 기가 죽어서 흐물 해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잘 절여지지 않은 배추는 녹아버린다는 걸. 한 달 정도 지나서 꺼낸 김치는 흐물흐물했다. 김치는 아삭아삭해야 하는데..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는 김치는 찌개로도 못 쓴다.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했다.



그리고 세 번째. 더 이상 실수를 용납하기 싫었던 나는 과감히 절인 배추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십 년 동안 나는 해마다 김치를 한다. 맛있을 때도 있고, 맛이 없을 때도 있다. 엄마 말처럼 그때 상황에 따라 이상하게 조금씩 맛이 다르다. 어떤 때는 엄마랑 똑같은 맛이 나서 동생에게 나눠준 적도 있었다. 지난주에 오일장에서 사 온 6 포기는 완전 실패다. 김치가 죽을 생각을 안 한다. 소금을 또 많이 쓴 것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을까?



그래도 또 마트 앞에 놓인 배추에 눈이 돌아간다. 이번에는 정말 잘할 것 같다. 조만간 다시 사들고 와 물부엌 가득 풀어놓고 김치를 할 예정이다.


모든 일은 자발적으로 하는 게 좋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선 계기가 필요하다. 엄마가 있을 때는 김치 할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도 있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친구들 중에는 내가 김치를 한다고 하면 놀라며 자기는 죽어도 못한다고 말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까. 막상 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다는 자체에 놀라서 미리 기겁을 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물가에 앉아 수영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물속에서 직접 수영하는 사람은 다르다.


장석주의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실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의 정당성과 도덕적 올바름이다. 실패가 곧 끝은 아니다. 실패는 또 다른 시작점이고, 국면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돌이켜 보면 나를 만든 것은 성공한 경험들이 아니다. 실패에서 습득한 지혜가 '나'라는 인간을 빚는데 기여한 바가 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에게 실패의 경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약하는 핵심 역량이 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P.255



작가는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라고 말을 한다. 나는 이미 김치 만들기를 통해 필요에 의해 도전을 하고 실패를 하거나 성공한 경험이 있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전업주부의 일은 성과는 없고 안 하면 티가 많이 난다. 청소하자마자 어질러지는 집과 씻고 밥하고 다시 씻는 무한반복 속에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로 했다. 일단 김치통이 가득 쌓이면 기분이 좋다.



분명한 건 짠 김치도 만들어보고 녹아내리는 김치도 만들어가면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낸 것처럼 책 읽고 글 쓰는 레마누라는 브랜딩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당장 바뀌는 건 없다. 하지만 하는 지금이 행복하고 기분좋다.


그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다.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그냥 편안하게 힘을 빼고 가는 거다.



가다 보면 결승선이 보일 수도 있고, 박수를 쳐 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난데없이 내리는 비를 맞거나 바람에 휘청거릴 수도 있다


그래도

글을 쓰는 지금이 참 좋다.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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