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끝까지 가는 편입니다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었다. 작가는 책 속에서 글을 쓸 때 아무거나 쓰지 말고 이왕이면 자신을 돌아보고, 나를 알 수 있는 키워드로 글을 쓰라는 말했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시큰둥하지만 글쓰기 책을 읽으면 꼭 따라 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이 하는 말은 무조건 듣는다. 그래서 오늘의 키워드는 장강명 작가님이 친절하게 알려 준 '내 인생의 5번째 영화'다.
5번째 영화를 찾으려면 1번부터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 영화는 많고, 나는 영화를 좋아해서 많이도 봤다. 감동받은 영화는 또 얼마나 많은데 그 모든 영화를 떠올리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당장 떠오르는 영화들로 단순하게 적다. 내 인생의 영화 5편을
1위 <첨밀밀>
남자친구가 벚꽃잔치에서 파는 커다란 액자를 선물해 줬다. 자취방을 옮기면서도 언제나 벽 한쪽에는 선물 받은 <첨밀밀>이 있었다. 첫사랑을 잊을 수 없듯이 <첨밀밀>이 준 감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누군가의 생일선물을 살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등려군의 CD를 선물했다. 사랑은 혹은 영화는 음악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2위 연인
숨 막히던 하루하루를 살던 고3 시절. 친구네 집에서 방문을 잠그고 <연인>을 봤다. 아무것도 몰라서 뭐든 알고 싶었던 19살의 나는 그때 자동차 안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는 장면에서 숨이 막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때로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적나라한 표현보다 더 자극적이고 섹시했던 손가락키스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3위 번지점프를 하다
이렇게 슬픈 사랑이 있을까? 얼마나 사랑하면 다시 태어나도 그 사람일까? 왈츠를 추던 두 사람의 영상을 오랫동안 메인에 걸어놓고 지냈다. CD를 구입하고 틈날 때마다 들었다. 이병헌의 목소리와 눈빛은 최고였다. 이은주라는 배우가 너무도 빨리 떠나버려 안타까움이 더해진 영화다. 독한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을 싫어한다.
4위 퐁네프의 연인들
줄리엣 비노쉬를 좋아한다. 그녀는 깊고 검은 눈동자를 지녔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영화처럼 아름다운 게 아니라 영화 그 자체였다. <퐁네프의 연인들>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았다. 불타는 다리, 어긋난 사랑. 사랑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다.
5위 흐르는 강물처럼
드디어 나왔다. 대망의 5위가. 처음 1위부터 3위까지는 분명했다. 누구한테도 금방이라도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위부터는 약간 망설임이 있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를 어디다 놓아야 하나 무진장 고민하기도 했다. 혼자만의 치열한 경합 끝에 <흐르는 강물처럼>을 5위에 놓았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잔잔한 영화다. 풍경은 아름답고 강에서 하는 낚시는 예술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브래드 피트'를 만난 나는 그만 그의 매력에 빠져 들고 말았다.
그리고 알았다. 세상 일이란 건 결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인간은 그 흐름 속에서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설령 그게 브래드 피트라고 해도.
아주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어른이 되고 말았다.
<책 한번 써 봅시다>에서 장강명 작가는 좋아하는 영화의 1위에서 5위까지의 순위를 매겨보고 이유를 두 줄씩 써보라고 권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분명하게 순위를 매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왜 중요할까? 장강명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자신이 어디에 가치를 부여하는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한 인생 영화 5편과 5위의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동경한다. 현실은 냉혹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다. 하지만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는 사랑이 있기에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 그게 영화를 통해 본 나의 마음이다.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편이다. 심할 때는 열 번 넘게 본 적도 있다. 집요한 데가 있다. 같은 영화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오래된 것. 고전적인 것. 순수한 것을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산다. 매일 꿈을 꾼다.
블로그에서 나는 "꿈 많은 베짱이"다. 생각 없이 지은 닉네임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 보니 무의식이 시킨 것 같다.
그래서 당신이 5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