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하면 떠오르는 생각
유독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일, 그때 당시 내 상황과 딱 맞는 일, 혹은 가슴을 철렁 이게 만드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각인된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들이 몇 개 있다.
초등학교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했던 말도 그중 하나다. 수업시간이었고,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들이 도망을 가는 상황이었다.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두 모자와 뒤를 쫓는 사람들. 잡히면 죽을 상황에서 아들이 넘어졌다. 엄마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달리는데 앞에 높은 담이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다 쫓아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담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이였다. 엄마는 먼저 아들을 올려 보내고 자신도 담을 넘었다. 그리고 두 모자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또 하나는 아이가 무거운 것에 깔리자 작고 약해 보이던 엄마가 그걸 들어서 아이를 구해낸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은 이랬다.
사람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힘이 있다. 그것은 일상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이 엄마처럼 극한 상황에서 위기에 닥치면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 해라. 네가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12살의 내가 이해한 건 대략 이 정도였다. 나는 그 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장면을 볼 때마다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곤 했다. 저 사람이 지금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가? 아닌가? 얼마나 힘들까?
매번 쫓기는 사람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꿈속에서도 열심히 달린다. 쫓긴다. 잡히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달린다. 죽을힘을 다해 죽지 않기 위해 달린다. 나에게도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엄마처럼 초인적인 힘이 나오길 기다리며 그렇게 달린다. 죽어라고. 열심히 달려서일까? 대부분은 잡히지 않고 꿈에서 깨어난다. 깨고 나면 다리가 폭싹 아픈 게 실제로 달렸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들이 일곱 살 즈음 일이다. 집 앞은 4차선 도로다. 차들이 많이 다닌다. 맞은편에 있는 마트를 자주 가는데 신호등이 없어서 길을 건널 때는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
마트에 간다고 했더니 아들이 따라왔다. 기분이 좋았는지 걷지 않고 뛰어갔다. 일곱 살 남자아이란 뛰거나 넘어지는 것밖에 모른다. 천천히 가라고 말을 해야지. 하는 순간이었다
아들이 횡단보도 앞에 서더니 좌우를 살피는 시늉을 한 후 와~~~ 소리를 지르며 길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야~~~~~~~~~~~~~~~
그건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 몸에서 나는 소리였지만 처음 듣는 소리를 내며 나는 번개처럼 달려갔다. 어떻게 길을 건넜는지도 모르게 달려가 아들을 잡았다.
아들은 혼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다가 엄마의 괴물 같은 외침에 놀랐는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있는 네일숍사장님이 놀라서 가게 앞으로 나와 우리를 쳐다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아들을 꼭 안고 있었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다.
잔뜩 겁을 먹은 아들을 진정시키고 집에 왔다. 온몸에 힘이 쪽 빠져나간 것 같았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내고 탈진된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아들은 절대 횡단보도를 혼자서 건너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다.
달리기 하면 생각나는 두 개의 장면이다.
쫓기는 사람. 달리기를 하며 신난 아이.
둘 다 최선을 다해 달린다.
뭘 하든 그렇게만 하면 될 것 같다는 뻔한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