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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Dec 13. 2023

쓰는 사람

소설가가 꿈 입니다만

얼마 전 남편친구들과 가족모임을 했다. 20년째 이어진 모임이라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걸 함께 한 사이다. 모임에서 전업주부는 두 명, 워킹맘은 4명이다. 남편이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 아내들도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나는 모임 중 막내여서 주로 듣는 편이다.


"요즘은 뭘 해?"

"그냥 똑같죠."

"하는 거 없어?"

공무원 언니가 물었다.


"글 써요."

"무슨 글?"

"소설이요."


입 밖에 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입이 방정이라고 무슨 주책였는지 모르겠다. 작년부터 블로그를 하고 올해 브런치작가가 됐지만 아마추어 글쟁이에 불과한 내가 감히 소설을 입에 올리다니. 그렇지만 바로 전날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했으니 아예 없는 말도 아니었다.


소설이라는 말에 갑자기 언니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어떻게 소설을 써?"

"저 국문과 나왔어요."

"국문과라고 다 소설 쓰나?"

"아, 제 꿈이 원래 소설가였어요."


이놈의 주둥이를. 뚫린 입이라고 줄줄 나오는 이 주책바가지 아줌마야. 소맥 한 잔이 문제였을까? 아직 확실한 것도 하나 없으면서 김칫국 먼저 마시는 게 특기이자 장기인 사람이다. 나란 인간은. 등단이고 당선이고 간에 일단 썼으니 나는 소설가라 혼자 명칭을 붙이고 앉아 있다. 웃기는 짬뽕이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른 언니의 근황으로 소재를 돌렸다. PT를 열심히 해서 프로필 사진을 찍은 언니는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사진을 보여 줬다. 5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은 언니를 칭찬하느라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을 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헬스로 다져진 몸과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처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없는 나의 꿈을 사람들에게 말했던 그 순간을. 손에 잡히지 않는 꿈, 나만 꾸는 달콤한 꿈을 말하면 듣는 사람들은 영혼 없는 리액션으로 답한다. 상관없다. 


나는 쓰는 사람이 되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보이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쓴 글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어떤 글을 쓰는지 일일이 설명도 못한다. 책 한 권 내지 않은 작가. 매일 글을 쓰지만 읽는 이가 거의 없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쓰는 사람이다. 쓰기 위해 읽고 쓰기 위해 생각한다. 나만의 굴을 부지런히 파고 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굴 파는 속도와 굴의 크기를 신경 쓰느라 정작 내 굴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때는 그럴 시간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이런 속도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뭘 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질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기웃거릴 시간이 없다. 그냥 써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쓰고 싶은 것이 생길 때 쓴다. 열 번 써서 안 되면 백 번 쓰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소설을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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