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쁘게 하는 것
스트레스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것들 예를 들면 배우자의 퉁명한 대답이나 무심한 눈길, 아이들의 뚱한 표정과 두 박자쯤 느린 대답들이 거슬리는 순간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가끔은 사람들에 의해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다. 좁은 골목길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면 온몸이 긴장된다. 목줄이 긴 작은 몸집의 강아지도 때론 위협적이다. 느닷없이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 생각보다 많이 나온 카드명세서, 열심히 했지만 아무 성과도 없는 글들.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몸이 반응할 때가 있다. 그래도 술은 안 된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빈병을 치우며 자신을 책망하는 일을 반복하기 싫었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고 자면 새벽에 너무 일찍 일어난다. 멍하니 앉아 있으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쇼핑을 즐기는 스타일도 아니다. 나는 가방이나 옷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옷만 주야장천 입는다. 요즘은 상갓집 갈 때 입을 옷을 주로 사고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도 즐겁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말만 하거나 또 어떤 이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다. 내 마음을 다 보이기는 싫은데 상대가 적당히 맞장구치는 건 또 보기 싫다. 사람 만나는 것도 점점 피하게 된다.
내가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건 책이 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 제일 신난다. 갖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를 하고 기다리고 택배문자를 받으면 설렘은 극도의 행복감으로 변한다. 오늘처럼 남편의 카드로 책을 살 때 즐거움은 극에 달한다.
11월 내내 우리 집은 독감과의 전쟁을 치렀다. 세 명의 아이들이 돌아가며 A형 독감에 걸렸다. 2주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나도 독감에 걸렸다. 겨우 살만해서 학교에 보냈더니 아들이 B 형 독감에 걸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막둥이가 B형 독감에 걸리고 오늘 남편이 마지막으로 독감에 걸렸다.
나는 그만할 말을 잃어버렸다. 독감이 뭐 대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이번 독감은 고열과 몸살과 두통을 동반한다. 막둥이는 이틀 내내 39도를 오고 갔다. 아들은 열독으로 윗입술에 물집이 세 개 잡혔다.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입술이 부르터서 웃을 때도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한다.
전업주부는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죄인이 된다. 그런 게 어딨 냐고 해도 그런 게 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들이 아픈 것만 같다. 예방접종을 제때 하지 않아서, 아이들 영양제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하다 못해 맛난 걸로 아이들의 체력을 길러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밤새 기침을 하는 아이 옆에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책에서 보면 워킹맘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책도 쓰고 글도 잘만 쓰던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새벽까지 잠을 안 자면서 글을 쓸 만큼 독하지도 못하고 집중력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저녁때쯤 진이 빠진다. 가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지만 반 정도는 버리기 일쑤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해지려고 장바구니에 있던 책들을 주문했다. 핸드폰결제였는데 남편이 요금을 낸다. 따라서 나는 남편 모르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6권 주문한 것이다. 몰래 하는 건 뭐든 짜릿하고 신난다. 그렇게 나를 달래줬다.
그리고 하루종일 비가 오는 오늘 책들이 도착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책들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막둥이도 오늘부터는 밥도 제법 먹는다. 내일까지 쉬면 될 것 같다. 그럼 토요일에 약속된 연말모임에 갈 수 있다. 열이 높다며 거실에서 낑낑대는 남편은 내일 내과에 데리고 가서 수액을 맞춰야겠다.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안 될 때는 가끔 꼼수를 부릴 필요가 있다.
다행인 건 나는 그다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걸 받아칠 힘도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행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어서, 나를 달랠 수 있어서. 오늘도 나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