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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an 07. 2024

처음이야

작가라고 소개했다. 어뜩해.

작년 8월 블로그에서 만난 작가님과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 달에 한 번 소설을 써서 메일로 보내고 이틀 후에 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번째 소설로 만난 날 작가님이 제안을 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글쓰기모임에 참석해서 회원들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등단한 것도 아니고, 출판도 해 본 적 없어서 못 하겠다고 했다. 작가님은 내 소설이 좋아서 그러는 거라며 계속 권유를 했다. 질문지를 받고 작성하고 검은 모니터를 보며 말하는 연습도 했다. 그리고 방금 인터뷰가 끝났다.


얼굴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흥분하면 말이 빨라져서 최대한 천천히 말을 하려고 했는데 실패다. 우아한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줌마가 하는 소리 같았다. 회원들이 내 이야기를 과연 듣고 싶어 할까?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무반응인 사람들을 보며 역시 재미없구나. 좌절하며 그렇게 30분 정도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줌에서 빠져나왔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제안을 받자마자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물질만능주의 남편은 그걸 한다고 돈이 나오냐고 물었다. 한번 째려봤다. 가끔은 돈보다 중요한 것도 있다. 소설을 막 쓰기 시작한 내게 중요한 건 자신감이었고, 작가님은 고맙게도 내 어깨에 뽕을 잔뜩 넣어주셨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작가님이 좋다고 한 소설들을 3군데 신문사에 보내며 살짝 기대도 했다. 소설 쓴 지 석 달만에 신춘문예당선? 혹시 나 천재? 혼자 김칫국을 먹었다. 결과는 꽝이었고, 작가님의 칭찬이 입에 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또 어떤가. 일단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나는 한 달에 한 편씩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일회성으로 끝나는데 내 소설은 계속 보고 싶다는 작가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1월 말이면 5번째 소설이 나온다.


지금 내 계획은 이렇다. 일단 쓰는 대로 어디든 응모한다. 문예지 신인상이든 어디든 보낸다. 당선되면 등단한다. 진리는 간단하다. 나는 무조건 소설가가 된다. 작가님은 망설이는 나에게 이런 일도 자꾸 해봐야 한다며 용기를 주셨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마이크 잡는 걸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즐겼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웅변을 해서 그런지 타고난 성향인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내 꿈은 어버이날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글짓기대회에 입상해서 방송출연을 하는 것이었다. 유명 MC에게 질문을 받으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도 가끔 내가 쓴 소설로 유퀴즈에 나가는 상상을 한다. 얼굴이 빨개지게 좋다.


나는 왜 이렇게 자꾸 얼굴이 빨개질까? 빨강머리 앤을 좋아해서 그런가? 말괄량이 삐삐처럼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당당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소설을 쓴다. 유재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야기한다. 나는 유창한 그의 진행솜씨에 이끌려 긴장을 풀고 얼굴색도 하얗게 돌아온다. 그리고 소설에 대해 술술 말을 풀어낸다.



오늘은 그날을 위한 첫 경험이다. 원래 처음은 뭐든 서툰 게 맞다. 처음부터 잘하면 나중에 할 말이 없다. 나는 오늘 소설가로서 첫발을 디뎠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앞을 보고 걸어갈 일만 남았다. 당장 저녁밥을 기다리는 줄줄이 사탕들이 있다. 이 글을 마치면 소설가에서 엄마로 변신할 시간이다. 변신도 자꾸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뭐든 계속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중요한 건 꾸준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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