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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Dec 06. 2023

쓸데없는 글쓰기

쓸모 있는 글

우리 집은 농사를 지었다. 남의 밭을 빌어서 농사를 지었는데 항상 일손이 부족했다.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밭에 갔다. 나는 토요일밤마다 기도했다. 일요일에 비가 오게 해 주세요. 하느님은 대부분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밭은 길가 옆에 있었다. 농약줄을 잡아당기다 보면 동네 친구들이 지나갔다. 커다란 패랭이를 쓰고 몸빼바지를 입은 나는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이 이름을 부를 때도 있었다. 잘 생긴 동네 오빠가 책가방을 메고 지나갔다. 도서관에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주말마다 밭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는 불을 끄며 빨리 자라고 했다. 책 한 번 사 주지 않았다. 학교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자 친구네 집에 있는 문학전집들을 빌려왔다. 책을 읽지 않는 친구네 집에는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이 책장 가득 있었다. 1번부터 시작해서 번호가 끝날 때까지 다 읽었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지금도 나는 책을 읽는다. 읽은 책을 포스팅한다. 매일 소설을 한 장씩 쓰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인스타에 사진을 올린다. 뭘 하긴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SNS가 문제다. 내가 아는 모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뚝딱뚝딱 책을 쓰고 글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백일글쓰기나 독서를 바탕으로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나도 백일 글쓰기를 했고, 독서포스팅을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이 하는 걸 나는 못 하는 것일까?


내가 쓰는 글은 나만 만족하는 글이다. 정보 전달이나 자기 계발서. 소설의 기능이 다르듯 독자들이 글을 읽는 이유도 모두 다르다. 여기서 문제가 나온다. 내가 쓰는 글은 어떤 글인가? 어떤 목적을 갖고 쓰고 있는가? 재미와 감동? 자아성찰을 통한 독자와의 교감 혹은 아름다운 문체로 인생을 논하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일상 속에서 만나는 문학의 즐거움? 생의 한순간을 수려한 문체로 포착해서 그려내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단 하나 분명한 건 쓸모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시간낭비는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내 글을 읽고 작가에 대해 궁금해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작은 울림을 받는다면 더 좋겠다. 내가 글을 통해 얻었던 그 모든 즐거움들을 나도 주고 싶다.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전부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떠나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한다. 머리 싸매고 있는 날 보더니 남편이 같이 드럼이나 배우자고 말한다. 음악에 맞춰 두들기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더니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묻는다. 글을 쓰면 더 힘들지 않아? 힘든데 그게 좋아. 남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방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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