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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Dec 05. 2023

진정한 나-진아찾기

진아를 찾으려고 글을 씁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양과 겸손을 미덕이라고 배웠다.

상을 받으면 내가? 왜? 설마라고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게 아니라 뭐가 잘못된 거 아냐?라고 쑥스럽게 웃곤 했다.

사람들의 칭찬에도 두세 번쯤은 손사래를 친다.

"에이, 아니에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걸요."

음식점에 가서 주문할 때는 그냥.. 아무거나..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고 정확한 의사 표현하는 것을 모난 돌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며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있다. 90년대 인기발라드를 들으면 울컥한다. 아직 트로트를 부르진 않는다. 뭔가를 포기하기엔 빠르고, 앞서 나가기엔 느리다. 세상은 빨리 돌아가고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뭘 하라고 강요한다.


SNS에서는 다들 자랑하지 못해서 난리다. 자랑할 게 없어서 밥 먹은 것, 마시는 커피까지 사진을 찍으며 올린다. 옷이나 신발이나 가방을 올리고 차 키를 테이블에 살짝 보이게 해서 사진을 찍는다. 키우는 강아지가 잠자는 사진을 올린다. 아이들의 사진이 올라오면 제일 먼저 옷을 살피고 어디 놀러 갔나 장소를 확인한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책을 읽지 않으면서 책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모두가 작가인 시대다. 나도 한번 해봐? 하다가 에이 내가 어떻게? 했다가 그래도 애보다는 잘할 것 같은데 하며 살고 있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살았던 탓에 혹시나 비난을 들으면 어떻게 하나 미리 겁을 먹고 머리를 땅에 박아버리고 산다.  그러면서 눈알만 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한다. 배가 아파죽을 것 같으면서도 앞서가는 사람을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뭔가 있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에 급급하다. 도전을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엄청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바닷가에 가서 발 담보고 태평양을 건넜다고 말할 기세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문득  이렇게 살다 가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박수만 치다 끝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이름 옆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어졌다. 가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잘만 하면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멋지게 살기로 결심했다. 멋지다는 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개인의 취향과 가치에 따라 멋짐의 형태가 달라진다. 내 눈에 멋진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건 책 읽기와 글쓰기다. 그 분야에서 빛나는 사람들이 좋다.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섣불리 쓸 수 없었다. 하루키처럼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자신이 없었다. 김훈의 문장처럼 짧고 간결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도 없고, 모파상처럼 반전이 기가막힌 단편소설도 못 쓰겠다.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입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게 된다. 허를 찌르는 스토리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배고픈 것도 잠자는 것도 잊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그런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점점 작아진다.


'아, 소설가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쓰는 글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쓰레기고 똥이다. '하며 머리를 수그린다. 쭈글쭈글 구겨진다. 그렇게 살다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항상 부끄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중학생딸한테는 어깨 펴라는 말을 그렇게 하면서 정작 내 공간 안에서 쓰는 글은 읽는 사람을 의식했다. 자유롭지도 치열하지도 심지어 깊은 사색도 없었다. 적당히 썼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다 처음에는 다짐용으로 썼다. 이제는 달라지겠다는 각오도 들어갔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돌아봐야 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내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아직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다.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중구난방이다. 뭘 쓰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쓰는 게 좋아서 쓴다. 뭐라도 쓰고 있다. 쓰다 보면 뭐라도 보이겠지.




나는 나를 좀 더 사랑하고 더 많이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자기 비하와 외면의 시간은 지나갔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고 아껴 줄 시간이다.

나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멋지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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