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글쓰기를 넘어 보편적 글쓰기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정신
아침에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남편은 출근하기 전에 티가 어디 갔냐고 묻는데 나는 "빨았는데.. 분명 빨아서 건조기에 넣고 꺼냈는데 어디 갔지?"라는 말만 반복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건조기에서 꺼내 빨래통에 넣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빨래통도 같이 사라졌다. 집 안 어디에도 없었다. 원래 빨랫거리를 모아둔 곳에는 오늘 빨아야 할 옷들만 널브러져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물부엌에 갔다. 빨래통이 보였다. 세탁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김장하는 날이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하나로마트에 가서 예약했던 절임배추 60킬로를 사고 왔다. 어제 끓여 왔던 육수로 찹쌀풀을 쒔다. 남편의 아침밥을 챙기주고, 사과와 배, 양파를 갈았다. 21 포기의 김치양념을 만들었다. 그제야 빨래를 돌려야지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빨래통에 있는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만 것이다.
남편은 기가 막히는 표정이었다. 정신이 다른 데 있으니 그 모양이라는 말을 남기며 출근했다. 나는 그 말에 상처받을 시간도 없었다. 뭐라 하거나 말거나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브런치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20년째 나와 살고 있는 남편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제 세 번째 소설을 들고 작가님과 합평시간을 가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이라 말을 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지만 가슴속에 할 말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이걸 어떻게든 풀어내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글을 쓰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한 글쓰기였다.
내 얘기지만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다. 이름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꿨다. 살짝살짝 에피소드를 넣고, 여기저기서 보고 들었던 장면을 삽입했다. 이렇게 쓰면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서 글을 썼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일기인지 한풀이인지는 모르는 글이었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소설가들은 그 많은 소재들을 어디서 잡아내는지.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나는 상상이 안 됐다. 잘 아는 것을 써야 하는데 내가 아는 것이라곤 겪은 일밖에 없었다.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걸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개인적인 글. 더럽고 치사하고 어이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 남들 눈에는 잘 웃고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이지만 속에선 천불이 나고 성질은 더럽고, 혼자 있을 때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썼다. 그런데 쓰고 나니 후련하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나를 아는 사람이 이걸 보면 어쩌지? 나인줄 뻔히 알 텐데. 누가 봐도 내 이야기인데. 혹은 등장한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기분이 나쁘면 어쩌지? 나는 출간도 하기 전에 독자의 반응을 걱정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작가님이 그런 날 보며 웃었다. 내 소설을 읽으며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덧붙여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고 생각이라는 말에 절로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왔다
지금 나는 개인적인 글쓰기에서 보편적 글쓰기로 한 단계 도약하고 있다. 경험을 객관화하는 연습 중이다.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글로 옮기다 보니 그때는 몰랐던 다른 상황들이 눈에 들어왔다. 1인칭 시점에서 3인칭 시점으로 넘어가면 감정의 개입은 줄어들고, 객관적 묘사가 가능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글의 소재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 느낀 것, 알게 된 것들 중에 마음을 흔드는 것을 쓰면 진솔한 글이 나온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 글이 술술 나온다. 그럴 때는 일단 쓴다. 쓰고 고치면 된다. 열 장을 쓰면 5장은 버린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글을 쓰는 건 잠깐이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하루종일 생각한다.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습관적인 행동을 할 때도 글 쓸 거리만 생각한다. 따라서 다른 데 마음이 가 있다는 남편의 말은 맞는 말이다. 이 글 역시 어제 작가님과 만나고 나서 내내 생각하다 쓰고 있다. 생각날 때 바로 쓰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키워드만 몇 개 딱 잡아놓는다.
글쓰기세상에 발을 집어놓았다. 걸어가든 뛰어가든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부디 지치지 않고 즐겁게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을 쓰는 게 좋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부끄럽지만 그래도 좋다. 김치를 하기 전 막간을 이용해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지금이 내게는 숨구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