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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15. 2024

퇴고의 힘

퇴고는 글쓰기의 본질

글쓰기는 퇴고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그저 그런 원고도 고통스러운 퇴고를 거치면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 된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글 쓰는 법이 아니라 퇴고하는 법이다. 


<퇴고의 힘>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멧 벨이 오랫동안 글을 쓰고 가르치며 터득한 원고 수정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작가라면 알아야 할 표현과 실용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부터 언제 어떻게 쓸 것인가까지 소설 창작의 전 과정을 알려준다. 소설가를 꿈꾸는 예비작가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여기 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가끔 책을 뒤척이거나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을 쳐다본다. 몇 줄을 신나게 써 내려간다. 읽고 커서를 올려 지운다.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구겨서 바닥에 던지는 장면과 비슷하다. 쓰는 사람은 지우는 사람이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리는 사람이다. 



머릿속에 가득한 멋진 장면과 인물들이 글로 변하는 순간 빛을 잃는다. 생각하는 것을 글로 써 내려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된다. 이렇게밖에 표현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한다. 


<퇴고의 힘>의 작가 맷 벨은 소설가이자 소설창작수업을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소설작법을 가르쳤다. 그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쓰레기 같은 초고를 붙잡고 늘어졌다고 한다. 퇴고를 위한 책이지만 소설을 쓰기 위한 단계별 길잡이책이다.


1장 초고: 첫 번째 원고 - 완성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써라

일단 생각나는 것들을 써라. 쓰기 시작하면 초고가 나올 것이다. 전체 줄거리를 써도 좋고, 장면들의 목록을 만들어도 좋지만 미리 정해진 구조에 갇히지 말아라. 이야기를 계속 쓰면서 나가보면 초고가 생명력을 얻는 순간이 있다. 가능성과 뜻밖의 놀라움을 발견할 공간을 최대한 많이 남겨두라.



◆ 하루에 2페이지씩 일주일에 5일 소설 쓰기 : 석 달이면 100페이지가 된다. 

◆ 하루에 네 페이지씩 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 의자에 두 시간씩 앉아 있기

◆ 아침 먹고 점심 먹기 전까지 쓰기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도 하루에 딱 한 문장 쓰기를 목표로 삼을 수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좋은 글만 쓰는 것이 아니다. 생각나는 모든 것을 계속 쓰는 게 중요하다.



2장 개고 : 두 번째 원고 - 거의 다시 써야 한다

초고를 쓰고 난 후 어느 정도 시간을 둔다. 초고를 잊어버리고 산다. 초고와 어느 정도 거리감이 생기면 초고를 다시 보면서 재발견할 준비를 한다. 이때 기존의 내용을 추려가며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쓴다. 


줄거리를 정리하며 소설의 주요 내용을 파악한다. 줄거리를 정리하면 초고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줄거리를 정리한다. 정리한 줄거리를 다시 수정한다. 초고를 다시 타이핑한다. 그렇게 옮겨 적는 동시에 공들여 정리해 둔 줄거리를 적용해 고쳐나간다. 


3장 퇴고 : 세 번째 원고 - 아직, 끝이 아니다

한 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 번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이야기 속에 머물며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원고를 더없이 훌륭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켜라. 


종이로 출력해서 글을 천천히 읽어라. 소리 내어 읽어라. 고치고 또 고친다는 것은 언젠가 소설을 완성하게 될 거라는 의미다. 소설을 시작하고 계속 써 나가며 최상의 형태로 만드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성취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퇴고의 힘>에 나온 대로 소설을 완성했다면 소설을 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한 것이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제목을 정하고, 인물을 설정하고, 배경과 시점을 갖춘다. 매일 꾸준히 일정량의 글을 쓴다. 처음부터 잘 쓰겠다는 생각을 버린다. 


그냥 쓴다. 쓰다 보면 글에 생명력이 붙는다. 초고를 완성하고 잊어버려라. 개인적 삶을 즐기고 예술을 음미하며 새로운 소재를 찾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초고를 다시 읽어라. 초고의 줄거리를 작성하고 문장을 살핀다.


최대한 많이 쓰고 최대한 많이 버려라. 1000페이지를 쓰면 300페이지가 남는다. 잘라 내도 의미가 통하면 된다. 글은 간결해지고 문장에는 힘이 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다. 설명이 빠진 소설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고치고 또 고쳐라


나는 글을 다듬기만 하려고 쓰는 게 아니다. 이야기가 내 초기 의도에서 나아가 더 복잡하고 낯설어지게, 적어도 지루함을 벗어던지게 만들기 위해 쓴다. 나는 고치면서 매번 바뀌는 각각의 원고를 전환점이라고 부르며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때까지 수정을 멈추지 않는다. 그때쯤 내 원고는 스스로 살아 숨 쉬게 되고, 더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로버트보즈웰-     



하얀 종이 위에 미끄러지듯 써 내려가는 글은 매혹적이다. 방금 쓴 글은 따끈따끈하고 신선하다. 쓸 때의 기쁨과 끝냈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못 한다. 쓰면서 힘들었던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마치 지독한 출산 과정을 겪으며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엄마 같다. 출산의 고통보다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커서 엄마는 다시 임신을 꿈꾼다. 모든 걸 잊을 만큼 글쓰기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행위다.


나는 소설 속에서 신이다. 그런데 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막무가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설은 산과 바다로 뻗어나가고, 내가 벌인 일을 감당못해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현실 속의 나는 엉망진창이지만 내가 쓴 소설 안에서 나는 완벽한 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신도 실수를 한다. 소설가가라고 해서 처음부터 완벽한 소설을 뚝딱 만들어내진 않는다. 하나의 글을 가지고 고치고 또 고칠 뿐이다. 이제야 알겠다. 소설이란 쓰고 나서 끝나는 게 아니라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시작이라는 것을.


<퇴고의 힘>을 읽으며 제대로 된 소설을 위해 작가들이 얼마나 많이 퇴고하는 지 알았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매일 소설을 써서 일단 완성한다. 그리고 고친다. 잊고 살다 꺼내 읽고 다시 쓴다. 고친다. 


<퇴고의 힘>은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안에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당신의 이야기가 소설이 된다. 소설을 쓰기도 전에 퇴고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 가슴 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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