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콧물과 싸우는 중이다. 아무래도 코 안에서 누군가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십 분정도 코로 숨 쉬면 다행이다. 금세 콧물이 고여 목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나온다. 갑 티슈가 감당이 안 된다. 두루마리 화장지 두 개를 책상에 갖다 놨다. 코를 풀면 풀수록 콧 속이 마르는 느낌이다. 물을 마신다. 기침을 한다. 걸쭉하고 노란 게 나온다. 이것들이 코와 목을 장악한 게 분명하다. 항생제를 쏟아붓고 있는데,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사람을 이렇게 바보 만들어놓고 아직도 성이 안 찬 것 같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란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아주 불만이 많은 사람이 되어 모든 일이 투덜거린다.
아플 때는 더 아픈 사람을 찾는다. 슬픈 때는 더 슬픈 이야기를 읽는다. 내가 고통을 견디는 방법이다. 머리가 아프면 종아리를 꼬집는 것. 지금 당장의 아픔을 잊기 위해 더 큰 아픔을 감수한다. 그게 나다.
사람들은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다. 불행에 아주 관심이 많지만, 자신에게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당연한 일이다. 당장 내 손톱아래 상처가 쓰린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아프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다리가 꺾어져서 깁스를 하거나, 맹장이 터져서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아픈 건 나만 아는 것이다.
아프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상대의 반응 때문이기도 하다.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하면 할 말이 없다. 내가 더 아파하며 아픔배틀을 할 수도 없고, 아, 말을 들어보니 네가 더 아프겠구나. 하며 꼬리를 내릴 수도 없다. 네 아픔보다 당연히 내 아픔이 더 크므로. 그래서 맞장구를 쳐 주긴 하지만 은근슬쩍 내 말을 흘리진 않는다. 아프다는 건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일반적이다.
글을 쓴다. 글에는 한껏 아프다고 해도 된다. 왜? 이건 내가 아픈 기록이자, 아플 때 생각나는 것들임과 동시에 내가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엉엉 울지 못 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눈물, 콧물 질질 흘리는 게 나란 사람이니까. 그래서 글로 쓴다. 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받아준다. 아니다. 글로 쓰다 보면 내가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다가 이 정도는 아닌데. 한다. 그렇게 쓰고 지우고 하는 사이 요동치는 마음이 가라앉고, 주변이 보인다. 뭔가 할 일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하면서 유리창을 연다. 글은 주변을 둘러보는 좋은 도구다.
국어 시험에 자주 나왔던 김수영의 시 중에 "눈"이라는 시가 있다.
눈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김수영전집1 시
시험에 주로 눈과 기침, 가래의 의미를 묻는 문제가 많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가래와 기침 때문일까? 김수영의 전집을 찾아 읽었다. 기침과 가래는 숨길 수 없다. 가래가 더럽다고 참으면 안 된다. 몸속에서 나오는 것들은 이유가 있다. 궂은 것들을 기침과 가래로 뱉어낸다. 김수영에게 밤새도록 고인 가래는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기침이라도 하라고 한다. 가래를 뱉으라고 한다. 참지 말고 삼키지 말고, 그렇게 살아 있는 눈에다 대고 뭐라도 해 보라고 한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고 기침으로 가린 말은 또 뭘까.가슴속에는 어떤 것들이 딱 달라붙어 있어서 가래를 뱉어도 뱉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 걸까?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솜이불을 덮고, 기모바지를 입은 나는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4월이 저 멀리서 머리에 꽃을 꽂고 신나게 달려오고 있다. 자잘한 꽃무늬원피스는 나이 들어 보인다는데 이미 나이는 들대로 들었으니 눈 딱 감고 나도 원피스나 하나 사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