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마당에 있는 동백나무를 잘랐다. 담벼락 가장자리에 있던 동백나무는 쑥쑥 자랐고, 해마다 붉은 동백꽃이 나무 가득 피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남편과 내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피부과를 다녀도 약 먹을 때만 좋아질 뿐이었다. 둘 다 알레르기체질이라 집 안 어딘가가 문제인가 싶어 침구류를 바꾸고, 정소를 부지런히 해도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이 검색해서 찾아낸 원인이 동백충이었다. 동백충은 동백나무에 기생하는 벌레인데, 잎을 갈아먹으며 산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잘 자란다고 생각했는데, 동백충이라니.
우리는 동백나무를 베기로 했다. 둘 다 간지러워서 살 수가 없었다. 예쁜 건 예쁜 거고, 일단 우리가 살아야 했다. 두터운 청바지를 입고, 옷을 몇 겹씩 껴 입은 남편이 전기톱으로 동백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가지가 잎이 툭툭 떨어졌다. 나는 떨어진 가지들을 모아서 텃밭구석자리에 갖다 버렸다. 밑동만 남은 동백나무는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일 년 후에 밑동 어딘가에서 작고 단단한 잎이 하나 나왔다. 신기했다. 가만히 나뒀더니 잎이 하나둘씩 나와 밑동을 감쌌다. 보기는 좋았지만 다시 동백나무가 커질까 두렵기도 했다. 두드러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당분간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동백나무 옆에 백합과 로즈메리를 심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꽃을 보고 싶었다. 장미를 몇 번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았다. 목련과 담팔수처럼 커다란 나무들이 있어서 꽃들은 잘 자리지 못하나 싶기도 했다. 마당이라고 할 것도 없는 조그만 화단을 가득 차지한 나무들은 멋대가리 없이 키만 늘려갔다. 남편은 해마다 철마다 나무를 이발시킨다. 정신없던 가지들을 정리하고 나면 금방 미용실에서 나온 사람처럼 단정해지는 게 기분이 좋다.
어제 우리 부부는 봄맞이 화단정리를 했다.
일요일 우리 집에 왔던 시어머니가 잔소리폭격을 날리셨다. 나무들 정리하고, 동백나무를 뽑아라. 그 자리에 어머님집에 있는 예쁜 꽃나무 두 개를 심어라.
여든여섯 살의 시어머니는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남편이 동백나무뿌리가 너무 깊어 뽑을 수 없다고 하자 어머니는 땅을 깊게 파면된다고 하셨다. 공간이 좁아서 땅을 팔 수 없다고 하자 해 보지도 않고 왜 못 하냐며 맞받아쳤다. 모녀가 싸울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좋다. 어머님은 혀를 차기로 하고, 째려보기도 하고, 소리도 높이면서 오십 넘은 아들을 몰아세웠고, 내 앞에서 혼이 난 남편은 괜히 무안해졌는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어제.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운동 갈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화단정리를 하자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었다. 남편은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나는 쪼그려 앉아 동백나무의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어머님 말씀도 맞고, 남편말도 맞았다. 땅 위에 드러난 동백나무의 기둥은 지름 십 센티 정도였는데, 땅을 파기 시작하자 양옆으로 뻗어나간 굵은 뿌리가 네 개 있었다. 기둥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땅을 팠다. 얼마 전에 본 영화 <파묘>의 최민식처럼 신중하게 부지런히 팠다. 곡괭이로 파고, 모종삽으로 판 흙을 옮기면서 한참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점점 드러나는 거대한 뿌리에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남편은 그전에도 동백나무를 파내려고 했는데 안 됐다며 나를 말렸다. 남편에게 당신이 제대로 하지 않은 거라고 했고, 남편은 일을 끝까지 해야 아냐. 척 보면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남편 앞에서 반드시 뿌리를 뽑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래, 핼스장에서 어차피 상체운동할 거였는데, 이걸로 운동대신하지 뭐. 오른손만 쓰면 안 되니까 왼손도 적절하게 사용해서. 안 되는 게 어딨어? 계속 파다 보면 언젠가는 뿌리가 보이겠지.
아니었다. 기둥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땅을 파내려 갔는데, 뿌리는 이미 동서남북으로 뻗어 있었고,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조차 안 됐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이 더 크고 강했다.
남편이 일을 끝내고 옆에 오더니 그만하라고 했다. 포클레인으로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는데 온몸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 아래를 봤더니 내가 파낸 흙들이 양 옆으로 쌓여있었고, 동백나무는 뿌리를 드러낸 채 당당히 서 있는 것이 마치 뿌리로 떠받쳐있는 것 같았다.
포기.
나는 이 아이를 이길 수 없었다. 흙을 덮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빗자루로 쓸고, 가지치기한 나무들을 버리고 오니 12시가 넘었다. 서둘러 씻고, 허겁지겁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반나절밖에 안 지났는데 하루가 다 간 것 같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밀린 집정리를 하고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가운데 자꾸 온몸을 드러낸 동백나무기둥이 떠올랐다.
남편은 겉으로 드러난 게 이 정도면 밑으로는 어마어마하게 뿌리를 뻗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기 위해 안으로 안으로 뿌리를 뻗어나가는 나무를 생각했다. 뿌리가 단단하면 나무는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단단한 뿌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들여 천천히 묵묵히 뻗어나간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치열하게 가열하게 안으로 안으로 뿌리를 만든다.
사람은 어떨까?
사람도 뿌리가 있을까? 우리의 뿌리는 무엇일까? 지금 당장 나는 어디에 발을 뻗고 살고 있나? 내가 버티고 서 있는 이곳에서 나는 뿌리를 내렸을까? 뿌리내리는 일은 고단하고 힘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보다 당장 화려한 꽃을 피우고 싶어 안달이다. 눈에 보이는 것. 누군가가 보고 환호해 주길 바란다. 뿌리는 얇고 가늘어도 좋다. 꽃만 예쁘다면. 바람 불면 날아가버릴지 몰라도 지금 예쁘고 화려해서 좋다.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거짓이다. 나는 기본에 충실한다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어떻게든 족집게과외를 받고 싶은 사람이다. 정도를 걷자고 하면서도 지름길을 누가 찾았을까 불안하며 눈을 돌리는 사람이다. 오래 걷는 것보다 빨리 뛰어서 도착하고 싶은 사람이다. 잘 뛰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뛴다고 같이 뛰다가 숨이 막혀 헉헉대는 사람이다. 나는 동백나무만도 못한 사람이다. 다만 그걸 알고 있을 뿐이다.
어렸을 때는 아무 기대 없이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당선됐다는 사람이 좋았다. 지금은 하도 많이 떨어져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하는 마음으로 응모했는데 당선되어 기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좋다. 순간 반짝이는 것보다 오래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게 오래간다는 걸 알았다. 아는데 자꾸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동백나무뿌리를 생각한다. 깊고 단단한 뿌리는 언젠가는 잎이 나오고,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