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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r 03. 2024

아주 평범한 미래

그 안에 네가 없는....

너는 군대에서 휴가 왔다는 말을 했어. 내가 일하고 있을 때 핸드폰에 음성을 남겼지. 성시경처럼 감미로운 네 목소리를 듣고 나는 퇴근시간을 손꼽아 기다렸어. 6시에 퇴근해야 하는데 누군가 일이 남았다며 좀 더 있어야 한다는 말에 짜증이 났어. 네가 기다리고 있는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말은 빠르고, 웃고 있는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지. 퇴근을 앞두고 나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쳤어.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지. 6개월 만에 보는데 네 앞에서 제일 예쁜 여자이고 싶었거든. 6층이었어. 내가 일하는 곳은. 너는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 가방을 챙기고 밖에 나가며 나는 유리창으로 밑을 내려다봤어. 네가 있었지. 색 운동복을 입고, 커다란 꽃다발을 손에 든 채 고개를 숙인 널 보는 순간 세상이 멈추는 것 같았어.



 나를 기다리는 널 이제 곧 만날 널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널 만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일 분도 안 되는데 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어. 1. 2. 3.4.5.6. 빨간색 화살표가 숫자와 함께 올라왔어. 문이 열리고 네가 은색 상자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지. 등 뒤에 꽃다발을 숨긴 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나도 기다리지 않은 척 상자 안에 들어갔고, 문이 닫히자마자 너는 꽃다발을 한 손에 잡고, 키스를 그래 키스를 했지. 6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내내 너와 나는 자웅동체처럼 붙어 있었어. 한 손에는 장미꽃다발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얼굴을 만지며 길고 가늘고 단단한 손가락이 내 얼굴과 눈과 입술을 만졌지. 그때 생각했어. 너와 헤어져도 이 순간만은 잊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난 약속을 지켰어.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소설

김연수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었다. 이상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1999년이 생각났다.


 그리고 따라오는 사람. 지금은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인데 그때 그 장면은 선명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사랑받고, 사랑했던 그때의 나일지도 모른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금의 나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현실은 아무 데도 못 가는데 소설을 읽으면 내가 알 수 없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으로 자꾸 간다. 가 버린다. 소설도 중독이다. 빠져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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