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청소를 하기 전 티브이로 유튜브를 검색한다. 요즘 내가 즐겨 듣는 영상은 90년대 발라드곡이다. 김동률노래모음이나 이오공감, 동물원의 노래를 연속해서 듣기로 놓고, 집안일을 시작한다. 가끔 가슴을 울리는 노래가 나오면 목청 높여 따라 부르기도 하고,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가사를 음미하기도 한다.
어제 고등학교 때 푹 빠졌던 가수의 노래가 나왔다. 가슴이 철렁거리면서 자잘한 소름이 돋았다. 잊고 살았다.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는 가요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락커였다. 긴 머리에 검은 가죽바지를 입고, 마이크를 잡고 온몸으로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생 때 나는 하드 락과 헤비메탈만 들었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외국그룹 "Helloween"의 대표곡인 "A tale that wasnt Raght"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한때 그와 결혼할 계획을 세웠고, 내가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의 음악감독을 그가 하는 꿈을 꾸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LP판도 없으면서 그의 레코드를 샀고, 그에게 백 편의 팬래터를 보내서 답장을 받기도 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가수이자, 나의 이상형이었던 사람.
갑자기 그의 근황이 궁금해진 나는 청소를 하다 말고, 유튜브 검색란에 그의 이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영상을 봤다.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 중이었다. 음악프로그램에 나온 그는 해골무늬의 반짝이는 쫄티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고음으로 유명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 그는 변하지 않았구나. 그토록 사랑하는 락을 여전히 부르고 있구나. 예전의 날카로운 턱선은 사라지고, 제법 후덕해진 얼굴에 살짝 끼는 것 같은 쫄티를 입고, 고음으로 올라갈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
좋으면서도 싫었고, 안도하면서도 씁쓸했다. 젊었을 때 좋아했던 것들을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유지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유들유들해진다는 말과 같다. 마치 처음에는 모난 돌이었다가 오랜 세월 파도에 씻기고 바람에 깎여 반들반들한 조약돌이 되듯 산전수전을 겪으며, 때론 꿈꾸던 것을 잃어버리거나 꿈이 희미해진다.
나도 한때는 예민하고 날카롭고 반짝이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락커로 활동하고 있다. 락에 대해 진심인 건 알았는데, 그 마음이 변치 않았다. 그는 어떻게 견뎠을까? 그 많은 시간들을 참고 견디게 만든 힘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그의 색이 바래지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저 정도는 고집이 있어야지. 생각하니 그에게 바쳤던 열정과 수고와 노력이 아깝지 않았다. 그는 나의 사랑과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평생 동안 한 분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중에 그가 있어서 다행이다. 고맙고 좋았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편한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건강도 생각하면서. 그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티브이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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