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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pr 01. 2024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지난주 일요일 독서모임에서 회원들이 함께 읽은 책은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몸의 소설에 빠져 살았다. 운영자가 내 블로그포스팅을 보고 책을 선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신나게 두 시간 동안 <인생의 베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줌마의 책읽기에 <인생의 베일> 있습니다^^.)


<인생의 베일>은 키티라는 철없는 여성이 사랑 없이 조건을 보고 월터라는 남자와 결혼한 후, 불륜을 저지르고, 남편이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한 키티의 깨달음,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뛰어난 작가의 능수능란한 글솜씨는 김수현작가의 막장드라마를 뺨쳤고, 그 와중에 툭툭 던지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읽으며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독서모임의 멤버들이 대부분 아줌마여서 그랬을까? 우리는 키티와 월터에 자신을 대입하며 열띤 토론을 했다. 자기 계발서보다 막장드라마가 재밌고, 결혼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불륜은 또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소설 속에서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는 결혼하지 2년인 부인 키티의 불륜사실을 알아차린다. 월터도 알고 있는 상대였다. 키티는 불륜 남인 찰스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 중인 중국 오지 마을 메이탄 푸에 동행할 것을 키티에게 요구한다. 싫다고 말하는 키티에게 그렇다면 지금 당장 찰스가 이혼하고 당신하고 결혼한다고 하면, 이혼해 주겠다고 말한다.


키티는 급한 마음에 찰스에게 달려갔지만, 당연하게도 찰스는 그런 키티에게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찰스에게는 완벽한 가정이 있었다. 좌절한 키티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월터를 따라 메이탄 푸로 떠난다. 그곳에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죽음, 숭고한 희생을 경험한 키티는 달라졌지만, 끝내 키티와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월터는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서 문제가 나왔다. 당신이 만일 월터라면?


이혼을 하고, 나만의 삶을 살겠다, 끝까지 이혼하지 않고, 옆에 두고 살다가 졸혼하겠다, 한 번은 용서하겠다는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은 월터를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얼마 전 아내의 불륜을 알아버린 중년의 남자다. 큰 아이가 28살이니 두 사람이 같이 산 세월은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아내가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자 용서했다고 한다. 한 번은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건 간에 남자가 여자를 이해했기 때문에 우리는 두 사람의 행복을 기원했다. 조금 있다 들려온 소문에 아내가 다시 집을 나갔다고 한다. 이번에는 남자도 화가 나서 이혼소송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부부사이가 뭔지 모르겠다. 가끔 남편과 드라마를 보다 말한다. 오빠는 나 바람나면 어떻게 할 거야? 넌 어떻게 할 건데? 나? 는 잘 모르겠는데 기분이 정말 나쁠 것 같아. 그러니까 바람피울 거면 들키지 마. 나만 모르면 돼.  너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닥치면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맥주를 따라주는 것만 봐도 화가 났는데, 요즘은 제발 밖으로 나가라고 밀어내고 있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속이 무진장 쓰릴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슬플 것도 같다. 그런데 사랑이란 게 정말 있다면 21년 동안 계속된다는 것도 신기한 노릇이긴 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6개월이라고.

작년 가을 마라도에서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 애틋함, 안쓰러움, 고마움 같은 이런저런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인 이상한 사랑이다. 그런데 그게 힘이 센 게 단순한 사랑은 식으면 끝나는데, 오랜 세월 애증이 더해진 사랑의 밧줄은 꽁꽁 묶여 있고, 매듭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겨져 있어서 풀어내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좋았던 일들, 힘들었던 일들, 같이 이겨낸 일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이걸 다 뒤덮을 만큼 어마 어한 사랑이 오지 않고서는 마음이 쉽게 변할 것 같진 않다.



그렇다고 남편이 뭔가 엄청난 잘못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은 작은 소리라도 지나가는 말이라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다.  급하고 성질 더러운 나를 감당해 주는 사람이다. 휴일에는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만 있어서 10살 딸이 학교국어시간에 우리 아빠는 나무늘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다.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합쳐도  장점이 훨씬 많아서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


독서모임의 누군가 그랬다. 결국 이혼도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라고. 나에게 뭐가 이득이 되는지 생각하며 움직이면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내 생각만 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남편을 사랑한다. 밥 먹을 때마다 다섯 번은 불러야 식탁에 앉는 남편의 뒤통수에 레이저를 쏘며 그래도 사랑한다고 되뇌고 있다.


당신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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