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진 일요일 오전이었다. 아니다. 오늘은 7시부터 9시까지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나는 어젯밤 잠을 설쳤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읽으며, 오늘 말할 거리를 체크했다. 그렇게 아침 독서모임을 마치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침 겸 점심을 거하고 먹고, 잠깐 정말이지 잠깐 쉬고 있을 때 앞집에 사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살짝 망설이는 목소리로 바쁘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있으면 나갈 거라고 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머님은 답을 피하면서 저녁에라도 올라와 보라고 했다. 나는 급한 일이면 전화로 말하라고 했는데, 어머님은 아니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찝찝했다. 수영장에 갔다가 북페어를 가고, 아이들과 벚꽃구경을 잠깐 하고 나서 집에 왔다. 가방을 현관에 놓고 어머님집으로 갔다. 어머님은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시다 내가 들어가자 몸을 일으키시고는, 천천히 말씀을 시작하셨다.
오래전에 내가 입으려고 산 치마들인데, 몇 번 안 입었다. 네가 입을 수 있으면 입어라. 그 말씀을 하시려고 전화하고 나를 불렀다.
어머님은 38년생이다. 나는 76년생이다. 아무리 복고풍이 유행이라지만 어머님의 옷은 좋게 봐도 입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장롱 속에 있어서 옷에도 훅에도 녹이 슬어 있었다. 무엇보다 사이즈가 문제였다. 어머님은 77 사이즈를 입었다. 나는 상체는 55이고, 하체는 66이다. 물론 이것은 아직 희망사항이다. 지금은 위아래 77이 맞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무조건 허리를 졸라매고 있다. 아무리 살이 쪄도 허리 28을 넘지 않는데, 어머님이 주신 치마들은 모두 32인치였다.
치수도 색상도 디자인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동네에서 소문난 패션니스타였다. 엄마는 옷을 살 때 자신의 체형을 돋보이게 하는 옷을 즐겨 입었다. 엄마는 쪼르륵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그건 옷을 입는 순간 몸에 촥 감기는 느낌을 설명하는 엄마만의 방식이었다. 상체가 가늘고, 배가 없고, 하체가 비만인 엄마를 꼭 닮은 나는 엄마처럼 옷을 입는다. 상체는 타이트하게 하체는 헐렁하게.
하지만 시어머니는 나와 체형자체가 다르다. 나보다 키가 훨씬 작고 몸피가 크다. 그래서 어깨는 넓고 소매도 통이 크다. 키가 큰 사람이 입으면 멋들어질지 몰라도 내가 입으면 영 아닌 옷들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끔 내게 자신의 옷을 주고 싶어 안달이다. 옷장에서 썩어가는 옷이 아깝다며 나보고 입으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아까우면 동네 할머니들에게 나눔이라도 하라고 했는데, 어머님 생각에 그 옷들은 할머니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가져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성질이 급하고 참을성이라고는 눈곱치도 없는 어머님이 독설을 날리셨다.
"전에 네가 입은 치마보다 훨씬 나은 거다. 네가 입는 옷은 오천 원을 줘도 안 사 입겠다."
같은 문 씨이자 성질이 더럽기로는 어머님 못지않고, 센 소리를 들으면 꼭 맞받아쳐야 하는 내가 대답했다.
"어머님이 제 옷 싫듯이 저도 어머니 옷 싫어요. 그러니까 옷 준다는 소리 하지 마세요."
깨끗한 흰 블라우스하나 챙기고서.
"어머님, 제가 이 옷은 한번 입어볼게요. 집에 가서 입어보고 이상하면 다시 가져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 집에 왔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어주며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어머님이 옷을 주셨다고 했더니 어머님도 참. 하며 돌아섰다. 다행이다. 남 폄이 온전히 내 편이어서.
사람들은 자기에게 소중한 것이면 다른 사람도 소중이 여기길 바란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타인의 취향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난 옳고 넌 그르다고 하면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21년 동안 시어머니와 앞뒷집에서 살면서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알고 있다. 한없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내 속이 문드러지는 것을 참고 견뎌야 한다. 자신만 편하고 싶으면 독한 사람이라는 욕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좋으면서 나쁜 사람, 친절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 친해진 것 같다가 갑자기 멀어지는 그런 사람이 된다.
어머님이 선을 넘을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