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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r 27. 2024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지난주 토요일 밤이었다. 잠을 자고 있었는데, 자는 내내 비눗방울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물에 빠진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답답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일어나지 않겠다고 버티는 몸을 겨우 달래며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목이 따갑고 아팠다. 소처럼 되새김질을 했다. 꾸역꾸역 몇 번 반복했더니 목에서 끈적하고 미끄러운 것이 나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끝도 없이 나왔다. 목 안에서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머리는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목 안에 있는 것들을 다 꺼내야 잘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 한동안 입에서 가래도 침도 아닌 것들을 끄집어냈더니 목이 바늘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침을 삼킬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자마나 침이 고였다. 아플 걸 알면서 조심스레 침을 삼키고 아파서 놀랬다. 그렇게 토요일 밤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이 되자 지독한 아픔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이 코로 가득한 것 같았다. 봄이 왔구나. 생각했다. 나는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데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바깥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다. 작년에 백일동안 만보 걷기를 하다 천식이 심해졌다. 제주의 봄은 내게 눈물과 재채기, 지독한 콧물을 선물한다. 하나도 반갑지 않지만 꼭 받아야만 하는 선물이다. 목요일 화단 정리를 하며 나무를 잘랐는데, 그때 생겼나 혼자 생각했다. 나는 시골출신이지만 꽃과 나무 알레르기가 있다. 동생은 웃으며 언니는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딱히 반박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코끼리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렸다. 실제로 코끼리가 밟으면 아작이 나겠지만, 나는 누워서 계속 코끼리의 발을 상상했다. 누군가 자고 있을 때 나를 때렸을지도 모르는데 강력한 용의자는 당연히 남편이었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아이들 수영강습이 있는데, 남편이 쉬자고 했다. 나는 안된다며 당신이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했다. 남편은 못한다고 했고, 나는 왼손에 화장지를 들고 그것도 못 하냐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금방이라도 코가 나올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고 일단 코를 먼저 풀었다.



 화낼 타이밍을 놓친 나는 큰 딸을 불렀다. 딸에게 아빠와 같이 가서 막둥이 머리 묶어주고 수영모자를 씌워주라고 했다. 그때까지도 남편은 가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요즘 평영을 배우는데 재미 붙인 아들과 막둥이가 빨리 가자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차키를 챙겼다.


 아무도 없는 집에 누워만 있었다. 언제 밥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틀 전에 "빵귿"에서 산 꼬르륵빵을 꺼냈다. 시오빵에 감자, 계란, 옥수수 샐러드를 넣은 시오 샌드위치인데, 옛날 샐러드빵 같아서 종종 사다 먹는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먹었다. 아프다고 아무것도 안 먹으면 안 된다. 기운은 없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이들이 수영을 마치고 와서 안부를 묻는다. 나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정작 혼자 있으니 잠이 안 왔다. 집에 사람들이 꽉 차니 그제야 잠이 쏟아졌다. 자는 내내 아이들은 방에서 놀았고, 남편은 드럼연습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아서 집이 조용했다. 자면서 생각했다. 나를 위해 소군거리며 대화하는 아이들을,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을. 몸은 분명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처지고 아픈데 이상하게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다.


 

 자고 일어나니 기운이 조금 났다. 냉장고에 있는 고기를 꺼내 돼지고기김치찌개를 하고, 금방 한 밥에 계란프라이로 저녁상을 차렸다. 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자 그제야 방에서 나온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남편은 드럼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집이 들썩거렸다.

 


 어제 오전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이비인후과에 갔다. 비염인 줄 알았는데, 감기가 심하게 왔다고 한다. 비염은 열이 안 나고 몸살도 없다고 말하며 링거를 맞는 게 좋겠다고 하는 의사 선생님께 시간이 안 될 거 같다고 했더니 주사라도 맞고 가라고 해서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약봉투를 받고 집에 오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제는 막둥이의 생일이었다.  남편에게 오늘 출근하지 말고, 기사노릇을 하라고 했더니 남편이 좋아했다. 출근을 안 하는 게 그리 좋은가 싶었지만, 일단 기사가 필요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고, 소고기와 미역을 샀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고, 나는 약을 먹어서 반짝하는 정신으로 막둥이의 열 번째 생일파티를 했다. 여전히 춥고 아프다. 이틀 내내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진액이 콧물로 나온 것 같다. 지금은 목이 잠겨서 말을 할 수 없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아픈 건 나쁘지만, 욕을 안 해서 좋은 것도 있다고. 이런.



 약을 먹어서 그런지 머리가 덜 아파서 밀린 글들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 정도의 글을 썼다고 발은 얼음장이 되고 온몸이 쑤시는 걸 보니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이것만 쓰고 다시 뜨뜻한 방바닥에 가서 누워야겠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해서 더 서럽다. 세상에 아프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보왕삼매론'의 1번은 이렇게 시작한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몸이 아픈  것을 좋은 약으로 삼으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 내 몸에 조금 더 신경 쓰고 돌아보라는 것일까? 아프지 않을 때는 몰랐던 주변을 돌아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뜻일까? 아들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아프지 않았을 때 나는 조급하게 뭔가를 원하고,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건강한 엄마에게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며 엄마가 아파서 좋은 점도 있다고 말했을까? 내가 아프자 아이들이 제 할 일을 찾아 하고, 먹은 그릇을 스스로 치웠다. 엄마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 엄마가 슈퍼우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서방님은 왜 내가 아프면 꼭 따라 아플까? 21년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웃님들 환절기 감기조심하세요. 아프면 나만 손해입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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