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방송국작가인 지인에게 인터뷰알바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제주에 <육필문학관>이 생겼는데, 관람객인 척하면서 리포터와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지용과 김소월의 육필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상태였는데, 거기다 촬영이라니.
전날 지인이 구성안을 보내줬다. 세수하며 몇 번 중얼거렸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건 뻔뻔해진다는 것이다. 웬만한 일에 놀라지도 않고, 설레지도 않는 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촬영에 들어갔는데, 리포터가 구성안에 없던 질문을 했다. 예정된 질문에 뻔한 대답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태.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고,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간에 할 말을 다하는 그래서 가끔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을 하는 엉뚱한 내가 튀어나왔다.
몰랐다. 말을 하는 내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는 것을.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은 것이 무척이나 건방지게 보인다는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보일 만도 했다. 나는 긴장해서 그런 거였는데. 긴장했는데 안 그런 척하느라 그런 거였는데. 평소에도 잘못하면 더 큰소리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남편이 딱 그 장면을 잡고 늘어졌다.
그런가?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그런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엄청 떨고 있는 사람. 시험에 무진장 신경 썼으면서 그래서 밤새 공부해 놓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 앞에서는 잠자느라 공부 못했다고 말하는.
아. 나 정말 무진장 얄밉고 못난 사람이었구나. 세게 보이고 싶은데 노골적인 것은 싫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는 싶은데 뒤끝은 강한. 그렇고 그런 뻔한 사람이면서 안 그런 척하느라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인터뷰하는 내내 주머니에 손을 짚어넣고 있었던 나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며 내가 생각하는 나와 진짜 나를 생각했다.
자신을 객관화하기. 아직도 난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