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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pr 04. 2024

그땐 그랬지

3살 난 아이가 한여름에 열이 나자 아이를 안고 뛰어 병원에 갔다. 한참을 기다려 선생님 앞에 앉았는데, 아이가 자꾸 엄마의 옷을 잡아당긴다. 엄마는 목이 드러난 브이넥 면티를 입고 있었는데,  아이가 잡아당기는 게 엄마의 가슴골을 드러나게 했다. 긴장하면 엄마젖을 찾던 아이다. 젖 먹이는 가슴은 때가 되자 부풀어 올랐고, 뽀얀 가슴이 도드라졌는데, 그걸 찾는 아이는 집요하게 티셔츠를 잡아당기고, 소아과선생님은 큼큼 기침하며 시선을 돌려 보지만, 엄마와 무릎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아이 엄마도 의사 선생님도 어쩔 줄 모르는데, 아이는 한사코 젖을 먹겠다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아이가 울 때마다 젖을 물렸던 엄마는 당황했다.  늘어나도 괜찮은 옷만 입고 살았다.  언제쯤이면 질 좋은 니트를 입고 맛난 커피 한잔을 천천히 마실 수 있을까 생각하자 까마득해졌다. 오래 전 일이다.



오랜만에 커피숍에서 책을 읽고, 도서포스팅에 올릴 글을 노트북에 쓰고 있었다. 옆자리에 젊은 엄마와 세 살 남짓한 아들이 보였다. 엄마는 앞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뭔가를 마시면서도 온 신경은 아들에게 가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면 나와 눈이 마주치는 자리에 있는 아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무심코 쳐다봤는데, 엄마가 당황해서 아들을 앉히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꽂힌 시선을  재빨리 노트북으로 옮겼다. 아무렇지 않은 듯, 관심이 없는 척했다.


나도 그랬다. 아이가 제대로 서지도 못할 때, 답답해서 사람을 만나러 가면 생각보다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신경은 온통 아이에게 있는데, 또 상대와 대화는 하고 싶고, 오랜만에 밖에 나왔으니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오래 머물다 가고픈데 아이는 안아달라고 하고, 잠깐만 눈을 돌리면 소파에서 내려가버리고.


커피숍에 일할 거리를 바리바리 가져갔다.


어쩔 수 없이 상대의 눈치를 살피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에게 짜증이 났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안기는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던 그럴 때가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컸다. 엄마를 찾지 않는 날이 왔다. 늘어진 면티대신 니트옷을 입고, 커피숍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한다.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아이를 안아 올리는 그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조금만 참으라고. 참고 견디면 언젠가 그 시절이 그리울 날이 온다고. 이 모든 게 나이 든 사람의 꼰대짓 같아 말은 못 하고 이렇게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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