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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된장국
자작시
by
레마누
Apr 26. 2023
감자
물이 끓으면 감자를 깍둑 썰어 넣는다
감자가 익을 때쯤 다진 마늘 한 숟갈과 대파를 썰어 넣는다
된장을 넉넉히 푼다
감자가 익으면서 국물이 걸쭉해진다. 고소한 냄새가 난다.
아버지는 매일 감잣국을 먹었다
둥근 스테인레스 밥상 위에
계란 프라이, 배추김치,
금방 한 하얀 밥 5개
엄마는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유리창을 열고 이불을 갰다
엄마보다 큰 딸 셋은 동그랗게 몸을 말며 저마다의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감잣국냄새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 배가 먼저 꼬르륵거렸다.
부모님은 감자밭을 자주 갈아엎었다.
트랙터가 지나간 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감자밭이 뉴스에 나왔다
냉동 창고에 쌓아두었던 감자마다리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날 어머니는
땅속으로 걸어갔다.
어머니가 죽은 땅을 일궈 감자를 심었다
작고 흰 꽃이 피어나자 밤새 감자꽃을 밟았다
아버지가 검은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다음 날 밥상에 감잣국이 올라오면 엄마마음이 풀어졌다는 신호였다. 엄마는 텃밭에서 뽑아낸 어린 배추를 넣어 만든 배추된장국을 즐겨 끓였다. 아빠는 배추된장국보다 감자된장국을 좋아했다.
엄마는 감자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감자가 썩어갈 때 나는 냄새가 시체 썩는 냄새 같다고 했다. 감자하나에 싹이 대여섯 개 나온다. 엄마는 작고 날이 선 칼을 들고 감자싹을 잘랐다. 엉덩이보다 훨씬 작은 목욕탕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면 아고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엄마는 나이가 들면서 눈가가 짓무르러 지고 눈썹이 찔러서 불편하다고 했다.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흙 묻은 엄마 얼굴을 봤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르는 엄마는 나만 보면 빨리 올라가라고 했다.
나는 엄마옆에서 작업복을 입고 일을 도와주지 않았다. 방에서 엄마일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엄마가 하는 말 중에 좋은 말만 들었다. 엄마가 작정하고 털어놓으려고 하면 급한 일이 생긴 것 마냥 서둘러
제주시로
올라갔다.
엄마가 없는 곳으로.
흙먼지가 없는 곳으로.
나만의 공간으로 도망갔다.
마트에 감자가 한가득 있었다. 아들은 감자된장국을 좋아한다. 푹 익은 감자를 숟가락으로 눌러 으깨고 밥을 말아먹었다.
밥 먹다 말고 울 것 같은 엄마를 본 아이들이 영문을 몰라 눈만 말똥거렸다.
감자꽃은 작고 새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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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토박이가 들려주는 제주이야기. 세 남매의 엄마지만 밥 하는 것보다 책읽고 글쓰는 게 더 좋은 불량엄마. 일상을 글로 풀어내는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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