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일요일 오후, 문득 나도 한번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게임하던 아들이 내 마음을 읽더니 벌떡 일어나며 같이 가자고 했다. 런데이어플을 깔고, 아들은 옆에서 포켓몬게임을 하며 우리는 무작정 집을 나왔다. 계획은 집에서 십 분 정도 떨어진 탑동 바닷가를 달리는 거였다. 그런데 아뿔싸, 집을 나선 지 오 분도 안 돼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비소식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뛰기로 마음먹은 날에 비라니.
잠깐 고민했다. 아들은 탈모되기 싫다며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비가 내리는 폼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탑동은 다음번에 가기로 하고, 집 옆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여차하면 집까지 뛰어갈 생각이었다.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아이들과 운동장을 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정도 비쯤은 하는 것처럼 비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덩달아 나도 비 따위는 하는 마음이 생겼다. 런아저씨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내게 1분 가볍게 뛰고, 2분 천천히 걷기를 권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와 천천히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달리기인데 너무 천천히 가는 거 아닐까? 걷기는 약간 빨라도 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운동장을 돌았다. 비는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유혹이었다. 달리기가 힘들 때 적당히 비 핑계를 댈만하게 내렸다. 하지만 내가 달리기로 마음먹은 순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늘 나 중심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하느님이 날 시험하시는구나 생각했다. 매번 이런저런 핑계로 하다 마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느님, 저 이번만큼은 한번 끝까지 가보려고요. 그러니까 저를 방해할 생각은 하지 말아 주세요. ^^
어제 5번째 달리기를 했다. 첫 주 세 번은 1분 달리기와 2분 걷기의 반복이었다. 2주 차에는 1분 30초 달리기와 2분 천천히 걷기다. 운동장 한 바퀴를 달려본 적이 없었다. 달리기라면 기겁을 하고, 질색을 하던 나였다. 2주 차에 1분 30초 달린다는 말을 듣고 에?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냥 달렸다. 그만 달리라는 신호가 올 때까지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랬더니 달리기가 됐다. 신기했다. 내가 운동장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달렸다. 중요한 건 30분 운동이 끝났는데, 별로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번은 충분히 더 할 수 있다고 말했더니 같이 간 딸들이 기겁을 한다.
엄마, 그만하세요.
오버
나는 항상 오버가 문제였다. 요가를 배울 때는 남들보다 더 다리를 찢고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선생님의 칭찬을 간절히 바라며 몸을 찢었다. 기초를 탄탄하게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빨리 앞설 생각만 했다. 처음에는 잘하는 것 같아서 신이 났는데, 중급반을 넘어가지 못하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다.
수영을 배울 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강사에게 몸이 나무토막 같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강습이 끝나도 수영장에 남아 혼자 연습했다. 취미로 배우는 수영을 훈련처럼 했다. 강습시간에도 뒤처지는 게 싫어서 죽기 살기로 따라 했다. 힘들면 좀 쉬어가도 되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집착했다. 잠수할 때는 내가 끝까지 남았다가 물밖에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수영도 중급반을 넘기지 못했다. 단계별로 강도를 달리해야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목숨 걸고 뭐든 했다. 그래서 빨리 지쳤고, 결국에는 나가떨어졌다.
달리기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일단 내가 제일 자신 없는 종목이기 때문에 오버페이스로 달릴 수가 없다. 가볍게 천천히라는 말만 되뇌며 따라간다. 그리고 어제, 나는 5번의 1분 30초 달리기가 끝나고 5분 천천히 걷기 시간에 걷지 않고, 가볍게 달렸다. 이유는 지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땀도 나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해 보고 싶었다. 런아저씨는 걷고 있는 줄 알겠지만 나는 뛰었다. 끝나고 운동장에서 옆돌기를 두 번 했다. 세 번 하고 싶었는데 아들이 빨리 집에 가자고 해서 못했다. 다음에는 옆돌기 다섯 번을 해야지.
옆돌기에 대하여
나는 옆돌기를 잘한다. 아주 잘한다. 어렸을 때부터 잘했다. 중학교 때 학교에 체조부가 있었다. 체육선생님은 반에서 유연성이 좋은 친구들에게 체조를 권했다. 나도 권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아빠 술심부름을 가면서도 옆돌기를 했다. 같이 가는 동생이 창피하다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옆으로 돌았다. 내 몸을 끌어올려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게 재미있었다. 물구나무서기도 좋아한다. 지금도 벽에 대고 물구나무서기를 종종 한다.
거꾸로 보는 세상은 재미있다. 뻔한 것들, 정해진 것들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반듯하게 보이는 어떤 것에 난 조그만 금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달리기와 옆돌기와 글쓰기가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른 채 당분간 계속할 예정이다. 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안 나오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