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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10. 2024

탑동에서 자전거 타기

아들의 첫 경험을 응원해

이번 어린이날에 제주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밤새 거센 비가 몰아쳤다. 아침에 조금 잦아졌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어린이날 비라니. 난감했다.


원래 계획은 이랬다. 오전 중에 문중묘제에 가서 제를 지내고, 점심을 먹는다. 2시부터 3시까지 수영강습을 받는다. 그 후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뒹굴거리다 집에 온다. 이미 아이들에게 계획을 말하고 오케이사인까지 받았는데. 비가 문제일 줄이야.


중학생인 큰 딸은 오히려 좋아를 외쳤다. 누가 집순이 아니랄까 봐 집에 있는 게 훨씬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하나도 좋지 않다. 일단 티브이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는 세 남매와 남편을 째려보느라 눈이 힘들다. 종일 나 혼자 동동거리고 있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비가 오는데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할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수영강습만 갔다 오고 집에서 넥플릭스로 "귀멸의 칼날"을 봤다. 



5월 6일 큰 딸은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며, 친구들과 시청에 놀러 갔다. 7일 날이 수학여행이라 일찍 오라고 했더니 4시까지 온다며 대문을 나섰다. 남편은 출근하고 집에는 12살 아들과 10살 딸이 있었다.


"우리 뭐 할까?"

"애묘카페가요."

"엄마가 주차를 너무 잘했어. 차 빼기 싫은데."

"그럼, 커피숍가요."

"가서 게임할 거잖아. 롤러장갈까?"

아들은 싫다고 하고, 딸은 좋아요를 눌렀다. 

"탑동에 자전거 타러 갈까?"

이번에는 둘 다 좋아요. 다. 


그래, 가자 탑동으로.......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 시절에 탑동은 젊음의 거리였다. 제주의 앞바다를 매립해서 만들었는데, 바다를 보며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여름이면 남자들은 농구나 족구를 했다. 연인들은 한없이 걷기만 해도 좋았고,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와 탑동에서 해 뜨는 걸 보기로 하고,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돌아간 새벽에 탑동광장에 검은 옷을 입은 깍두기아저씨들이 줄을 선 채 90도 인사하는 것을 보는데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있다. 


탑동은 내게 그런 곳이다. 약간의 일탈과 추억이 가득했다. 지금 탑동은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내기 좋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는데 한 시간에 2,000원이다. 낡고 녹슨 자전거가 많았지만 아쉬운 대로 4,000원을 내고 자전거 두 대를 빌렸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자전거를 못 탄다. 큰 딸이 6살 때 세발자전거를 샀다. 8살 때는 두 발자전거를 사서 아빠가 큰 딸에게 자전거를 배워준다고 학교 운동장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딱 두 번 갔다 온 아빠는 힘들다며, 두 손을 들었다. 베란다에서 6년 동안 자전거는 방치되어 있다 얼마 전 버렸다.


처음에는 자전거에 관심이 없던 아들이 자전거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7살 때즈음이었다. 남동생과 탈 걸로 생각해서 하얀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삼천리 자전거를 샀는데, 타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자 바퀴에 바람이 빠졌다. 


아들은 그 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다. 나는 아빠가 바람을 넣어줘야 탈 수 있다고 했고, 아빠는 바람 넣는 기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들은 떼를 쓰기고 하고, 울기도 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우리 부부는 아들이 12살이 되도록 자전거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린이날 아무것도 못해준 게 미안해서 이번에는 큰 맘먹었다. 화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었다. 딱 15분 만에 짜증 냈다. 

"몸을 자꾸 움직이니까 넘어지는 거잖아. 등을 고정시키고, 멀리 보고, 페달을 빨리 돌리란 말이야."


아들이 눈물을 보였다. 사람들이 즐겁게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며 지나갔다. 

"여기서 울면 안 돼. 울지 마."

아들이 눈물을 훔치는 사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동생 잡아주고 있을 테니까 네가 혼자 해 봐. 작은 자전거니까 넘어져도 괜찮아. 엄마가 아무리 말해도 네가 안 하면 몰라. 페달을 딱 세 번만 돌리고 넘어지겠다 생각하는 거야. 할 수 있겠어?"


아들은 혼자 자전거를 탄 지 5분 만에 페달 열 번을 돌릴 동안 넘어지지 않았다. 아들과 눈이 마주치자 엄지 척을 신나게 날려줬다. 우느라 얼굴이 빨개졌던 아들이 이번에는 신나게 웃었다. 한번 자신감이 붙자 내 곁에는 오지도 않고 멀리 나가는 아들을 쳐다본다. 


탑동에서 자전거타는 아들

"멋지다. 내 아들." 

제 몸보다 훨씬 작은 자전거를 타면서도 좋다고 돌아다니는 아들을 보는데 난 왜 눈물이 나는 걸까?


5월 6일 아들은 자전거를 처음 탔다. 친구들과 탑동에 놀러 갔을 때, 자전거를 타는 여자친구의 꽁무니만 쫓아다녔던 아들은 이제 나란히 친구들과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친구들이 타는 건 더 큰 자전거란다. 아들아. 하는 말은 차마 못 하고, 그럼, 당연하지.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고, 눈물도 많은 아들. 하고 싶긴 한데 무서워서 쭈삣거리는 성격이 답답할 때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앞으로 뛰쳐나갈 때도 혼자 서 있던 아들 때문에 속상한 적도 많았다.



 지금은 알고 있다. 우리 아들은 조금 천천히 가는 아이라는 걸. 뜨거운 냄비를 덥석 잡고 나서 우는 아이가 아니라 뜨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이는 아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기가 맡은 일은 묵묵히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아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삼겹살과 구운김치


집에 오자마자 고기를 사다 구웠다. 다음 날 3박 4일 수학여행 가는 큰 딸과 1박 2일 인성 수련을 가는 아들을 위해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과 구운 김치를 대령했다. 다른 요리를 하고 싶어도 식구들이 고기만 외치니 방도가 없다. 사실 고기 굽는 게 제일 쉬운 건데. 이럴 때는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떤지.



저녁을 먹고 치우고 있는데, 막둥이가 옆에 오더니 엄마를 도와준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효녀**이라고 부르는 막둥이가 고무장갑을 끼고, 숟가락을 씻는다. 엄마 옷이 편하다며 위아래 엄마옷을 입고,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만만하게 보였던 오빠가 자전거를 타는 동안 자기는 세발자전거를 탔다는 것이 속상했던 막둥이는 다음부터는 탑동에 안 가겠다는 말로 마음을 전했다. 


자전거를 배운다는 건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다. 막둥아. 엄마도 얼마나 많이 넘어지면서 배웠는데. 무르팍 까지고, 바지 찢어지고, 하수구에 빠지고, 박힌 가시 빼내면서 아파서 눈물도 흘리면서 그래도 일어나 페달을 돌려야 돼. 누군가 잡아주는 걸 기대하지 말고, 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앞으로 가는 거야. 자전거를 탄다는 건 그런 거란다. 막둥아.


배울 때는 힘들지만, 한번 타는 법을 알고 나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으니 힘들게 배울 가치는 있어.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렴. 오빠 잘 탄다고 배 아파하지 말고, 너도 잘하면 되는 거야. 사랑해. 막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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