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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y 13. 2024

당신은 무슨 세대인가요?

이렇게 단정지어버리면 곤란합니다만....

나는 X세대다.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긴가민가하며 말하고 다녔다. 입술에 검은 립스틱을 바르고, 눈두덩이에 짙은 갈색 셔도우를 칠했다. 과산화수소로 탈색해서 개털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똥 싼 바지를 질질 끌며 다녔다. 번화가에선 길거리 리어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와 김건모가 잘못된 만남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내가 부르는 서태지의 랩이 노래냐고 했다. 나는 엄마와 대화가 안 된다며 집을 나갔고, 혼자 살면 자유를 만끽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자취하고 한 달 만에 공중전화에 백 원을 넣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었다.


 나는 X세대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했다. 공중전화에서 삐삐로, 핸드폰으로 바뀌고, MS도스를 배우던 컴퓨터학원에서 전화선을 연결한 삼보컴퓨터를 사용하다 전화요금이 30만원 넘게 나온 적이 있었다. 몇 달치 월급을 모아 노트북을 사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는 아궁이에 불을 때며 물을 데워 8 식구가 목욕하고 집 밖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에 가는 게 고역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안에 화장실이 생기고, 보일러만 틀면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가 있는 집에 살고 있었다.

 

 나는 X세대다. 김현정의 다 돌려놔를 목놓아 부르고, 이정현의 바꿔를 마이크 바꿔가며 불렀다.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를 손바닥으로 엉덩이 쳐가며 출 수 있다. 잘 추고 못 추고는 문제가 아니다. 함께 노래 부르고,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게 중요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간다는 영화를 보며 서울을 상상했고, 야타족이 한 번도 내 앞에 나타난 적은 없었지만 뭔지는 알고 있었다.


 천천히 돌아가는 지구 안에 있으면 어지럽지 않은 것처럼 나도 세상의 큰 흐름 안에 있었지만, 너무 커서 느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따라갔다. 눈이 나쁘고, 걸음이 느려서 빨리 앞설 순 없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뒤듲게 하는 편이다. 나는 X세대였다. 오늘 중학교2학년 큰 딸이 엄마는 무슨 세대야?라고 묻길래 X세대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에게도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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