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Aug 17. 2024

3박 4일 대전 여행기 1

8월 7일부터 8월 10일까지 3박 4일 동안 아들과 대전에 있었다. 올해 4월에 아들은 학교친구 5명과 팀을 이뤄 전국창의력챔피언대회를 준비했다. 두 달 동안 연습하고 6월에 제주예선에서 1등을 했다. 엄마들이 바빠졌다. 서둘러 호텔을 예약하고, 비행기표를 준비했다. 창의력챔피언대회는 총 3일에 걸쳐 치러지는데, 우리 팀은 첫날인 8일에는 제작과제를 9일에는 즉석과제, 마지막날인 10일에는 표현과제를 배정받았다. 세 번의 기회의 주어졌지만 상위권에 들려면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면 안 됐다. 



아이들은 이 대회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예선전을 준비하며 우리는 일요일 오후 4시간씩 연습했다. 제주대표로 뽑힌 후부터는 선생님과 함께 학교에서 맹연습에 들어갔다. 여름방학을 한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갔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연습했고, 대회가 다가오자 점심을 학교에서 먹으며 오후 3시까지 연습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최선을 다했다.



나는 아들이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가 아프지 않게 신경 썼다. 혹시나 해수욕장에 갔다 아프기라도 할까 염려되어 놀러 가지도 않았다. 큰 딸과 막둥이의 입이 오리처럼 나왔지만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었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 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대회날이 다가왔다. 아들과 내가 처음으로 단 둘이만 비행기를 탔다. 무엇보다 이 여행이 의미가 있었던 건 비행기표와 숙소예약을 내가 다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비행기표를 사 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말해주면 알아서 다 해줬다. 엄마가, 동생이, 남편이 했다. 내가 할 일은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것뿐이었다. 짐도 남편이 알아서 부쳤다. 한 마디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어른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함께 가는 엄마들은 MZ 세대다. 핸드폰예약과 키오스크사용이 능숙했다. 단체카톡방은 늘 시끄러웠고, 나는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쫓아가느라 숨이 찼다. 나만 못 하겠어.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만 뒤떨어질 수도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누군가 말했다. 기계작동이 안 된다면 기계잘못이 아니라 작동하는 방법이 잘못된 거라고.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아들과 함께 무사히 대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창의력챔피언 대회는 대전 DCC에서 열렸다. 우리는 근처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성심당 DCC점이 바로 앞에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대전의 맛집을 검색할 때 나는 숙소 근처의 산책로를 찾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갑천변이 있었다. 가기 전에 계획을 세웠다.



하루키는 여행지에서 반드시 조깅을 한다고 했다. 새벽잠이 없는 나는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면 새벽에 일어나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가족과 함께 가는 여행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에 놓칠 수 없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깨면서 엄마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도 마음껏 아침을 즐기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조깅을 즐기기로 작정했다. 삼일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20분에 호텔을 나섰다. 생각보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집에서 챙기고 간 뉴발란스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그들과 큰 위화 감 없이 걷고 뛰었다.



다리를 건넜다. 갑천변을 따라 걸었다. 제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다리가 나타났다. 저 다리까지만 가보자. 그런데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그래, 딱 저기까지만 가보자.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며 걸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뭘 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다.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릴 힘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웅크리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직시하고 달려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응원했다.



대전여행이 끝나서 제일 아쉬운 건 3일 내내 먹었던 성심당의 빵과 팥빙수가 아니라 갑천변에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아들에게 카이스트에 와라. 엄마 맨날 여기서 달리게. 했지만 진심이었다.   


  

아침에 운동하고 오후에 돌아다니다 보니 3만보를 훌쩍 넘겼다. 이틀은 삼만보를 넘겼고, 하루는 2만 6 천보를 찍었다. 이상하게 지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살도 쪘다. 아무리 많이 걸어도 먹으면 살이 찐다는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3일 동안 건강한 돼지가 됐고, 조금 커진 마음을 안고 제주로 돌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