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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ug 18. 2024

소설or소설같은 현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무교였다. 친정엄마는 집 앞에 있는 산방굴사에 다니며 40살에 아들을 낳았다. 초하루마다 제를 지냈다. 엄마에게 종교란 친정엄마처럼 기대고 의지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마음이 불안할 때면 새벽에 물 한잔을 떠놓고 손을 비비며 간절히 기도했다.



시어머니는 불교신자다. 불공에 빠지지 않고 다녔다. 그러면서 보살집과 무당이 하는 굿을 자주 했다. 사업을 하는 시어머니에게 종교는 사업번창이라는 개인적 욕망을 위한 수단이었다. 돈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가 있다고 믿었다. 결혼하고 두 번의 유산을 겪은 후 7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시어머니를 따라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보살과 무당을 만나러 다녔다. 나중에는 서울까지 올라갔다.



극락사는 우리 집에서 40분 떨어진 곳에 있는 절이다. 시어머니와 이모님이 다니는 절에 나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공 때만 다녔는데 시험관을 두 번 실패하고 나자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법당에 앉아 백팔배를 하며 울었다. 부처님께 잘못을 고하고 빌었다.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부처님이 그 말을 들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7년 만에 아이를 낳기 시작해서 5년 동안 세 아이를 낳았다.



그다음부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에 다녔다. 절에 가면 90은 훌쩍 넘은 할머니들이 곱게 차려입고 절하는 걸 본다.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천천히 절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무겁고 진지해진다. 평생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남은 힘을 끌어모아 자식들의 안정을 비는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가늠이 안 된다.



그런 할머니 중에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 동네 사는 분인데, 어머님보다 연세가 많으셔서 내가 삼촌이라고 부른다. 오늘 절에 갔다 점심공양을 하던 중에 삼촌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끝나고 내 차로 같이 가자고 했더니 삼촌이 한사코 손을 저으며 버스를 타고 간다고 했다. 차로 40분이지만 버스를 타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린다. 괜찮으니까 꼭 같이 가자고 해도 버스 타면 된다고 하던 삼촌은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오는 사이 버스를 놓쳤다고 했다. 신세지는 거 싫다고 끝까지 거절하는 삼촌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왔다. 이 이야기는 삼촌이 집으로 오는 동안 들려준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쓴 글이다.


-삼촌, 잘 지내셨어요?

-아이고, 말마라. 꼬리뼈 수술해그네 죽당 살아났쩌게. 

-아고, 어쩌다가.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허당 큰큰헌 남자아이가 축구공을 찬 거에 맞앙 넘어져신디 엉치뼈가 부서져부런게. 가이도 놀래그네 어멍아방 부르고, 난리를 피는디 나가 아들만 불러달랜해그네 아들이영 119탕 병원가그네 수술한거 아니. 2년전에 경해신디 아직도 물리치료다념서. 것때문에 복싹 늙어부렀저게. 우리 아덜신디는 축구공에 맞았댄 말안해신디 수술비가 천사백이 나온거라. 아이들이 고생했쭈게.



-그 축구공찬 남자는 아무 연락도 없었어요?

-어게. 미안허댄 말도 안 해라. 병원에서도 나신디 돈받아야 된다고 말해도 그거 받앙 뭘 헐꺼라게. 가이도 놀래실건디. 우리 아이들도 몰라. 나가 평생을 경 살았저. 놈한티 싫은 소리 못허고 궂은 말도 안 허멍. 못 허크라. 것도 해 본 사람이 허는거주.

-그래도 너무했다. 아무리 삼촌이 그래도 남자는 병문안이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니예요?

- 우리 서방 군인갔다그네 폭동신디 총 맞앙 피고름내멍 병원에 살당 죽어신디 그때가 31살이여서. 난 29이였고.. 아이들이 6남맨디 다 착해. 공부허지 말랜해도 악착같이 허멍 아이들이 장학금받앙 서울대도 가고 교대도 가서. 우리 아이들도 나 닮아그네 놈한티 뭐랜 못 헌다게. 요즘 사람들은 너미 팍팍하고 독허게 사는디 난 경 못허여. 너미 헐때가 이신다. 

-삼촌이 복을 많이 지으니까 자식들도 다 잘 된 걸꺼예요.



-우리 집 앞에 사는 여자가 이신디 완전 똥갈보라. 남자는 밤마다 폐지에 빈병주우러 가민 여자는 곱딱허게 화장해그네 춤추래 가는거라. 남편이 애쓰게 종이팔아 온 돈은 지가 다 가지멍. 집은 또 얼마나 엉망이고, 쓰레기도 한번 종량제봉투에 버려본 적이 어서. 동네 여기저기에 쓰레기 버리고, 개똥도 우리 집 화단에 버려분다게 잘도 독허고 모진 여자라. 근디 남자가 밤새 일허고 들어오민 아침밥은 차려줘야 하는거 아니? 여자가 나 치킨 먹고 싶어요. 라고 했댄. 아침운동행 오는디 남자가 대문에서 나오멍 나한티 경 고라라게. 속으로만 그 여자 욕하멍 들어가신디 남자가 오꼿 치킨집에서 팍 쓰러졍 죽어분거라.

-너무 힘들어서?

-무사 죽은 진 몰라도 힘들엉 죽었겠지. 밤새 일허멍 졸바로 먹지도 못 해신디 여자가 나 치킨 먹고 싶어요. 허난 사래 간 거 아니.

-근데 남자가 바보예요. 왜 여자말에 그렇게까지 하는데요?

-아고, 경 안허민 여자가 그릇도 던져불고, 화분도 독독 뿌셔불고. 잘도 독허난 남자만 열 번째랜 햄시네.

-그런 사람도 있어요?

-게난, 서방 죽엉 일주일도 안 되신디 빨간 바지에 노란 남방입고 빨간 입술 발라그네 새벽부터 나가라게. 아고. 그런 사람 어서. 나도 90이 넘으멍 그런 여자는 처음 봐서. 남자네 아기덜한티 돈 안 주잰 변호사 사그네 집이고 통장이고 지가 다 가졌댄 해라게. 남자네 아이가 셋인디 아방 죽은 것도 몰랐댄 허난 말 다 헌거 아니. 그 여자가 근디 언제부턴가 안 보이는거라. 알고보난 길거리에서 쓰러져그네 이신 걸 새벽에 청소하는 사람이 발견행 병원에 가신디 이제 숨만 붙어그네 요양원에 누워있댄해라게. 

-아. 진짜요?



-게난 애기어멍도 너무 팍팍하게 살지 말아. 사람일이 어떵될지를 모른다. 애기어멍 착한 거야 나도 잘 알주만은 사람이 살다 보민 궂은 생각도 들고, 모질고 험한 마음도 먹어지는디 호꼼만 촘으민 지나가는 일도 있는거라. 아고. 그나저나 여기 세우라게.

-아니예요. 집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무사게. 영 신세지민 나 막 미안해그네 못 살아. 아이들이라도 이서시민 돈이라도 줄건디. 아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어떵할꺼니

-아니예요. 삼촌.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들어가세요.

-아고. 고마워라. 잘 가이. 고마워요.



삼촌을 내려주고 집으로 오는 내내 삼촌이 들려준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근황토크에서 시작해서 삼촌의 인생을 한눈에 보이게 묘사하는 능력, 생생한 인물묘사, 흥미진진한 전개와 반전, 마지막 교훈까지 완벽했다. 책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살아 숨쉬는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나는 삼촌의 이야기를 따라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할 일이라곤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기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글로 써 놓으니 그저 그렇다. 직접 들을 때의 감동이 없어졌다. 살아 숨쉬는 글을 쓴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늘 절에 갔다 오길 잘했다.는 아주 평범한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추신: 시어머니보다 5살이 많은 삼촌은 29살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6남매를 키우셨다. 번듯한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는 6남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경이롭다. 삼촌은 90이 넘었음에도 허리가 꼿꼿하고, 피부가 곱다.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해 주신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않는다.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웃으며 안부를 묻고, 불공이 끝나고 돌아갈 때는 차에 안 탄다고 극구사양하시다가 끝내 타신다. 나는 이상하게 삼촌이 좋다. 일찍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나이가 들면 그 삼촌을 닮을 것 같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삼촌과 절에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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