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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Sep 02. 2024

백온유의 장편소설 "경우 없는 세계"를 읽고

새벽불공을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좁은 골목을 지날 때 일이다. 5시 40분쯤이었는데, 시어머니를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차 앞에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있었다. 길에 떨어진 걸 먹고 있는지 차가 앞에 있어도 꼼짝하지 않았다.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로 후진했다. 그제야 눈치 빠른 두 마리가 차를 힐끗 보더니 길 옆으로 갔다. 문제는 제일 작고, 하얀 고양이었다. 두 마리가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를 먹었다. 나는 다시 조금 앞으로 차를 움직였다가 후진했다. 새끼 고양이는 귀가 안 들리는지,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랬는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뒷자리에 탄 시어머니에게 고양이 때문에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후, 다시 후진했다. 그제야 고양이가 눈을 들었다. 눈동자가 파리하게 빛났다. 고양이는 급하게 자리를 떴고, 나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백온유의 장편소설 "경우 없는 세계"를 읽는 내내 아침에 본 들고양이 세 마리가 떠올랐다. 우리 동네는 옛날 동네라 단독주택과 빌라가 많다. 좁은 골목들이 여기저기 뻗어 있어 차를 타고 다니기는 불편하지만, 걷기에는 좋다. 가끔 산책 삼아 새로운 골목을 걷는다. 걷다 보면 제일 많이 만나는 게 길고양이들이다.


벽을 타고 오르는 고양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 골목을 가로지르는 고양이. 살금살금 걷다가 기척에 놀라 담을 오르는 고양이. 앞 집 지붕 위를 천천히 걷는 고양이. 고양이들이 참 많다.


궁금할 때가 있다. 고양이들은 어디서 자고, 뭘 먹고사는 걸까? 비 오는 날이나 날이 추울 때, 올해 여름처럼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더위에 고양이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백온유의 장편소설 "경우 없는 세계"에 나오는 나는 어른이다. 자립해서 살고 있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는 어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밤 귀신들에게 시달리고, 지독한 추위에 떨며 살고 있다. 나를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와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수긍밖에 할 줄 모르는 어머니를 떠났다. 떠나는 순간까지 망설였고, 밖에서 보내는 순간순간마다 후회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도 붙잡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출청소년이 되었고,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렸으며, 적당히 나쁜 짓을 했지만, 언젠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졌다.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모르지만 최악인 줄 알았던 상황이 결코 끝이 아닌 건 분명했다. 안전한 지붕이 없는 나와 친구들은 서로의 몸을 끌어안아 온기를 만들어보지만 몸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다.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당장 먹을 것을 걱정했지만 돈을 벌면 길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견디는 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나와 비슷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를 내가 사는 옥탑방에 데리고 왔다. 그 아이와 밥을 먹고, 옷을 챙겨주고, 아이와 이불을 나란히 깔고 누웠다. 밤이면 달려드는 귀신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들고양이처럼 밖으로 돌았다. 나의 호의를 의심하고, 작은 관심을 간섭이라고 싫어했다. 똑같았다. 그 옛날의 나와.



  내가 어렵던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굴처럼 좁고 더러운 반지하방에서 가출한 아이들이 모여 살 때도 경우는 주변을 치우고, 규칙을 정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경우를 잃지 않았다. 그의 이름처럼 그는 경우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렸기 때문에 어리석었고, 그로 인해 경우를 잃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버팀목이 되고 싶었던 건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반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넘어지려고 하는 그 아이를 잡아주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오래전에 들은 교육강의 중에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구절이 있다. 강사님의 말에 의하면 사춘기 때 아이들은 누구나 가족보다 친구를 중시 여긴다고 한다. 그게 당연한 것이고, 친구들 앞에서 센 척하는 것도 그들만의 방식이다. 집을 나가고 싶은 것도 사춘기과정 중의 하나다. 그래서 집을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집을 나가면 좋은가? 



 처음에는 좋을 수도 있지만, 바로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돈이 떨어지면 할 일이 없고, 돌아갈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가 중요하다.



집 나갔던 아이를 아무 말 없이, 혹은 반기며 받아주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얼굴을 보는 순간 욕지거리가 먼저 나올 수도 있다. 



후줄근한 얼굴로 자식이 집에 돌아왔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속 섞이고 힘들게 한 아이지만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하며 팔을 잡아끈다. 아이는 안 들어오겠다고 버틴다. 그래도 잡아끈다. 못 이기는 척 들어오면 따뜻한 밥을 차려 준다. 배가 부른 아이는 따뜻한 방에서 온몸을 쭉 뻗고 잠이 든다. 편안한 잠에 빠져든다.



 다른 상황도 있다. 얼굴을 보자마자 욕을 들으면 아이는 이놈의 집구석. 하며 돌아선다. 자기 때문에 부모가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뭐 잘했다고 기어들어왔냐는 소리에 열이 바쳐 나온다. 갈 데도 없으면서, 나가고 싶지도 않으면서 그냥 뛰쳐나간다. 잡아주면 좋을 텐데. 잡아서 달래주면 못 이기는 척 들어갈 텐데. 나간다. 아무도 잡지 않는다. 그 길로 끝이다.



백온유 장편소설 "경우 없는 세계"에서 나는 그랬다. 몇 번이나 부모님이 자신을 찾아오는 상상을 했다. 못 이기는 척 돌아갈 생각도 했다.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혹시나 어머니와 마주치길 바랐다. 기다리다 지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하얗고 나른한 고양이를 봤다. 내 방이 고양이창고가 된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나온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나를 버렸구나. 나는 돌아갈 집을 잃었다.


우리는 가끔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좋은 부모와 따뜻한 집, 착한 친구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른다. 환경이 먼저일까? 내가 먼저일까? 어떤 사람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예외도 있다. 현재 미국의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가 지은 "힐빌리의 노래"는 오하이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다.  



밴스의 주변에는 마약이나 알코올의존증으로 자녀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부모만 존재했다. 밴스의 어머니 역시 마약중독자였지만, 밴스에게는 친구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엄하지만 손자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할머니가 있었다. 밴스는 할머니 덕분에 교육에 흥미를 잃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비행을 저지르는 대신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어떤 사람이 있어 고양이들이 살아간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면,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낼 수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험한 상황에서도 실망시키고 싶은 한 사람만 있다.


면 비틀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나갈 힘이 난다. 



백온유의 장편 소설 "경우 없는 세계"에서 나는 어렸을 때는 경우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똑같은 상황에 처하자 나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경우가 없는 세계에서 내가 경우가 된다. 우리 모두 경우가 된다면 경우 없는 세계도 제법 견딜만한 곳이 된다. 



조금 더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거든요. 내 방에서 자고 싶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싶어요




죽은 자와 다름없는 삶이라고 내가 아무리 주장해 봤자 나는 살아 있다. 아무리 떨어도 내 체온은 36.5도인 것이다. 이 반성 없는 몸으로 앞으로도 살아가겠지. 이런 내가 이호에게 손을 내밀어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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