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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l 29. 2024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의 장편소설

책을 읽고 울어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슬픈지. 가슴이 아픈지. 영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책이 보여준다. 얼마 전 읽은 책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맥주를 부른다. 술에 취하고 싶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홈트레이닝을 하고, 낮애는 아이들과 수영장에 갔다 오고, 그러는 사이 만보가 훌쩍 넘게 걸어 다녔지만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 


오랜만에 휘성의 노래를 듣는다. 닿지 않는 곳을 꿈꾸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몇 년 전 휘성의 콘서트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같이 간 친구는 뭔가 이상하다는 말을 했는데, 얼마 안 있어 휘성이 뉴스를 장식했다. 나는 그 친구의 촉을 부러워하면서도 휘성만의 슬픈 목소리만을 기억했다.


유독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것이라 뭐라 설명이 필요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 이상이 그렇고 시인 백석이 내겐 그런 사람이다.


김연수의 장편소설을 모르고 읽었다. 김연수라는 소설가를 좋아해서 골랐는데, 백석이 주인공인 소설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백석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나타샤와 흰 눈이 펄펄 나리던 날 당나귀를 타고 떠난 백석은 없었다. 


북에서 태어나 고향을 그리워했던 시인은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일 수도 없었지만 맞서는 것은 더욱더 하지 않았다. 개인의 감정과 감성은 약하고 부질없는 것으로 매도당하던 시절 누구보다 향토적인 것을 사랑했던 시인은 그래서 시를 쓸 수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가슴을 울리는 일이다. 아무 의미 없이 흔들 임 없이 글이 절로 나오지 않는다. 강요당한 글, 목적을 가진 글은 뻔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백석은 생각한다. 거짓으로 연기하며 살 것인지 자신을 속이며 쓰는 글을 글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쓰지 않으면 하얀 벽 앞에 서야 한다. 두렵다. 그는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헤맨다. 그의 마음은 오래전  머물었던 따뜻한 통영에 있지만, 몸은 일 년의 반이 겨울인 곳에 존재한다. 그는 움직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눌러 담는다. 그러던 어느 날 쓴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읽어줄 사람 없는 시를 쓴다. 그리고 태운다. 쓰고 나서 태워질 것이라면 굳이 거짓으로 쓸 이유가 없었다. 마음을 고스란히 적어 내린다. 감상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아무 의미 없는 아름답기만 한 글을 쓰고 태운다. 재가 날아간다. 그가 쓴 글은 그의 몸을 잠깐이나마 데우고 사라진다.


슬픈 글이었다. 작가는 시인 백석이 살았으면 하는 삶을 그려냈다고 한다. 나는 소설가가 그려낸 시인이 정말 그랬을까 봐 슬펐다. 소설보다 더 모질게 살았을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소설이 작가의 상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소설을 읽고 또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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