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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r 18. 2024

면도날, 서머싯 몸

윌리엄 서머싯 몸은 1874년 1월 25일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의 고문변호사였던 로버트 몸의 막내아들로 태어나다. 여덟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열 살 때 아버지를 암으로 잃는다. 영국으로 돌아와 숙부의 보호 아해 캔터 베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런던에서 세인트토마스 의학교를 졸업한다. 산부인과 경험을 옮긴 첫 번째 소설 <램버스의 라이지>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의사를 포기한다. 1908년에는 런던 4대 극장에서 희곡이 네 편이나 동시에 상영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작가 수업을 하고, 1928년 프랑스 남주에 정착한다.



<면도날>은 자전적 소설인 <인간의 굴레에서>와 고갱을 모델로 예술 세계를 파고든 <달과 6펜스>와 더불어 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이다. 1965년 12월 16일 프랑스 니스에서 아흔한 살로 눈을 감았다.



<면도날>의 줄거리


미국 일리노이 주의 시골 마을에서 평범하게 자란 래리는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소망하나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전쟁 중 유능하고 친했던 동료가 자신을 구하다 죽는 것을 목격한 후, 래리의 가치관은 큰 변화를 겪는다. 안정된 생활과 사랑을 뒤로하고, 인생과 삶에 대한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프랑스의 탄광과 독일의 수도원,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거쳐 인도의 아슈라마로 이어지는 긴 여행을 떠난다.



인생을 최대한 쓸모 있게 사는 사람들


<면도날>은 평범한 미국청년 래리가 인생의 참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려냄과 동시에 래리의 주변 인물들의 삶을 보여준다.


래리의 약혼녀이자 래리를 사랑했던 이자벨은 현실 속 모피코트를 포기하지 못하고, 부유한 주식중개업자와 결혼한다. 미국의 경제호황 열풍을 타고 거품처럼 재산을 부풀려나갔던 이자벨의 남편 그레이는 경제대공황을 겪으며, 돈을 모두 잃어버린다. 그레이에게 돈이 없다는 건 자신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그레이는 무던히 노력해서 재기에 성공한다.



미국의 무역업자이자 타고난 사업가인 엘리엇은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사교계를 휘어잡는다.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유럽인들의 혈통을 동경했던 엘리엇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자벨은 엘리엇의 도움으로 화려하고 가식적인 사교계에서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래리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나는 엘리엇의 친구이자 유명한 소설가다.


제목 <면도날>의 의미


<면도날>의 첫 장을 펼치면 문장 하나가 나온다."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현실과 구원 사이에 면도날이 놓여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자신 앞에 놓인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간혹 현실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쫓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가 안 되는 고난의 연속이다. 편하게 차를 타고 가면 되는 길을 굳이 걸어서 숲 속을 헤쳐가는 사람처럼 무모하고, 어리석게 보이기도 한다.


면도날의 칼날을 넘어서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눈앞의 행복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면도날> 속 래리처럼.


<면도날>의 배경


<면도날>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과 유럽(파리, 시카고, 런던)이다. 미국과 유럽 상류층 사회와 엘리트주의에 작가는 돋보기를 갖다 댔다.


시대적 배경은 1920년대와 1929년 세계대공황을 거쳐 1930년대까지 이어진다. 1920년대 미국은 19세기 산업사회의 융성 이후 20세기 초 전대미문의 풍요로운 시기가 찾아온다. 물질적 풍요와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미국의 모습과 이후 경제대공황으로 몰락하는 과정까지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엘리엇과 이자벨이 화려하게 집을 꾸미고 파티를 여는 모습에서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게츠비>가 연상된다.



현실과 이상 사이


작년 겨울에 <달과 6펜스>를 시작으로 <인생의 베일>, <인간의 굴레에서>, <케이크와 맥주>, <면도날>까지 서머싯 몸의 소설 5편을 읽었다. <달과 6펜스>는 세 번째 읽었다. <인간의 굴레에서>는 서머싯 몸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며, 몸이라는 소설가의 유년 시절을 알게 됐고, 그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5권의 소설에는 직업과 성별은 다르지만 비슷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달과 6펜스로 나눌 수 있다.



<달과 6펜스>를 포스팅하며 상징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달은 붙잡을 수 없는 존재. 정신적인 영역이라면 6펜스는 돈으로 이루어진 세계, 즉 현실이다.



<면도날>에서 래리는 달의 세계이고, 이자벨은 6펜스다. 이자벨은 래리를 사랑했지만, 현실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래리와 파혼하고, 부자인 그레이와 결혼한다. (몸은 그런 이자벨에게 사랑은 있지만, 열정이 없다고 비난한다. 열정은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까지 사랑한다.)



달은 머무르지 않는다. 화를 내지고 분노하지도 않고 동요하지도 않는다. < 케이크와 맥주>에서 예술과 현실사이를 오가는 소설가를, <인생의 베일>에서는 죽음 앞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나(늙고 유명한 소설가이자 화자)와 래리는 파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에 말이 없던 래리는 나의 간청에 의해, 자신이 왜 미국을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았으며, 그로 인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인도에서 배운 것이 뭔지를 이야기한다.



먼 훗날 사람들이 좀 더 커다란 통찰력을 얻게 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에서 위안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P.445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착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예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 P.459



평범한 삶의 위대함

소설 <면도날>은 서머싯 몸이 70세인 194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희망과 의욕이 넘쳤던 20세기 초와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대공황의 충격, 그리고 이어진 세계제 1차, 2차 세계대전까지 겪으며 살았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면도날>은 평범한 삶의 위대함을 일깨웠다.




비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았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지만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하지 않고 꼰대스럽지도 않다. 70대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다니(감각적이고, 인물묘사가 뛰어나고,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서머싯 몸이 더 좋아졌다.



90세까지 살면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거나 체험하는 기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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