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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19. 2024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가장 두려운 것은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 : 주제 사라마구


1922년 포르투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캐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후 19년 간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한다.  1968년 시집 <가능한 시> 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2010년 여든 일곱의 나이로 타계했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읽을 때 받는 충격은 똑같았다. 문장은 살아 숨쉬고, 상황은 끔찍했으며, 인간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하거나 잔인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눈뜬 자들의 도시>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줄거리


한 도시에 갑자기 눈앞에 뿌옇게 안 보이는 "실명"전염병이 퍼진다. 첫번째 희생자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눈이 안 보여"라는 말을 하며 사거리에서 빵빵대는 차들 틈에서 울부짖었다. 그를 도와주고 집까지 데려다주었지만 그의 차를 훔친 도둑, 그가 아내의 부축을 받고 찾아간 안과의  환자들과 의사. 그들은 차례대로 우유바닷 속을 헤엄치는 듯 뿌옇고 하얀 어둠을 맞게 된다. 의사는 직업적 소명으로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 역시 실명된다. 당국은 멀어버린 눈이 멀지 않은 눈에게 실명을 옮긴다고 판단하고 이를 전염병으로 간주. 고립되고 낡은 정신병원에 이들을 격리시킨다.  건물에 모인 눈이 먼 자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군인들. 그리고 눈이 보이는  단 한 사람의 이야기.




<눈먼 자들의 도시> '만약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사람이 보게 된다면'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눈이 멀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눈은 단순히 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사람들은 눈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소유했던 많은 것. 거의 전부를 상실한다. 직업과 집, 권위와 권력이 눈이 먼 순간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인간의 존엄성은 똥덩어리위에 주저앉을 때 이미 사라졌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이름이 존재하는 않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은 나를 드러내고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멀게 된 사람들에게 이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 곧 우리가 누군지도  잊어버릴거야. 우리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라. 사실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개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개는 냄새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여기 있는 우리도 색다른 종자의 개들과 같아. 우리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나 말로 서로를 알 뿐, 나머지 얼굴 생김새나 눈이나 머리 색깔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          P. 86




눈먼 사람들의 수용소 격리,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이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군인들, 전염병을 억제하기 위해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서둘러 격리시키는 정치인들, 눈먼 사람들간의 이기주의와 대립 갈등, 어디서나 나타나는 범죄 집단들의 폭력과 횡포, 무정부상태에서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관리되지 않아 더러운 도시. 넘치는 쓰레기들과 오물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묘사되는 이런 장면들은 더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수용소나 격리 시설, 총으로 위협하는 군인들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사람의 목숨을 선별하고 가치를 매기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이미 익숙하게 보며 살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다 보면 사람이란 뭘까. 인성이란 게 과연 어떤 조건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순수한 선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인간의 야만적인 폭력. 사회적 악에서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중요한 것은 자존심을 잃지 않는 것


눈이 보이는 단 한 사람. 의사 부인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그녀가 이 말을 자주 되풀이했기 때문에,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그녀의 충고를 하나의 금언으로, 격언으로, 교리로, 생활 규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처음에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간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가 의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인간에 대한 혐오와 증오 대신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도와주는 사람들에게서 언제 닥칠 지 모를 위기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했다. 인간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씻어주고, 사람들간의 연대 의식이야말로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꼭 필요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따뜻한 인간 사회로 만드는 연대 의식의 중심이 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란 거죠.                                      P. 461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사람들. 이제 <눈먼 자들의 도시>는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면서 끝이 난다. 그런데 그들이 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눈뜬 자들의 도시>로 이어진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읽기 편한 책이 아니다. 글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상세한 묘사로 인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연속해서 나온다. 사방에 오물투성이 쓰레기 천지인 거리가 저절로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책을 읽으며 상상한 장면들이 있는데 혹시 영화에서 그보다 조금이라도 덜 끔찍하면 실망할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은 두껍고 길고 끔찍한 사건들이 연속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눈이 멀어서 볼 수 없는 사람과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사람들. 나는 과연 어느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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