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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26. 2024

바늘-천운영단편집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천운영의 <바늘>당대의 여류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을 보여준다.


육식을 즐기고, 싸우고 물어뜯는 여자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낯설고, 두렵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의 사체를 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적나라하고 비린내 나는 문장들이 한번 잡으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천운영의 단편집을 읽으며 나는 여류작가라는 말이 얼마나 불필요한 말인지 생각했다. 성별은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저마다 다를 뿐이다. 


나는 문신을 하는 여자다. 나를 찾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협각류의 단단한 외피를 얻으려고 한다, 거미나 전갈 따위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남자는 두려움을 침묵으로 이겨내기 못하고 끊임없이 말을 한다. 남자에게 독한 코냑 한잔을 따라준다.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협각류의 외피를 얻을 자격이 있다. 내가 남자의 허벅지에 달라붙어 바늘을 집어넣을 때면 남자들은 나의 몰골이 추함을 다행으로 여기며 성적 흥분을 가라앉힌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꼽추를 연상시키는 둥그렇게 붙은 목과 등의 살덩이. 눈살을 찌푸리는 목소리, 뭉뚝한 발가락. 남자들은 나를 보며 추함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지만 내 바늘 끝에서 나오는 문신은 지독히도 아름답다. 내가 만든 문신은 아름답고 나는 추하다. 그렇다면 내가 추한 것인가? 아닌가?

어머니는 나의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가 미륵암에서 주지스님을 만나고 나를 버렸다. 나는 그 후 김사장을 따라 문신을 배운다. 한복집을 하던 어머니의 고운 바느질 솜씨를 따라 나도 한복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사라지고 나는 사람들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나는 끊임없이 강한 것을 갈망한다.


육체에 새겨진 글귀는 그걸 새겼을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 준다. 

‘노력’이나 ‘저축’ 같은 글귀가 그렇다. 한번 열심히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결의가 살을 파는 아픔을 이겨내게 만들었을 것이다. 역으로 문신에는 앞으로 감수해야 할 삶의 시련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문신을 하는 사람은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뒤엎는다. 어쩌면 그들은 어딘가 의지할 곳을 찾아서 자신의 몸에 무언가를 새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늘이 들어오는 아픔을 견디면서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마음의 힘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면 그들은 강한 것일까? 약한 것일까?


어느 날 맞은편 집에 사는 얼굴이 하얗고 목소리가 맑은 남자가 찾아왔다. 전쟁박물관에서 일하는 그에게선 화약 냄새가 난다. 가장 강인한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 허약하고 소심해 보이는 남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싫어한다. 남자가 말한다. 내 몸을 가장 강력한 무기들로 가득 채워 줘. 칼이나 활. 미사일 비행기 뭐든.

나는 남자의 가슴에 새끼손가락만 한 바늘을 하나 그려준다. 


티타늄으로 그린 바늘은 어찌 보면 작은 틈새 같다. 어린 여자아이의 성기 같은 얇은 틈새. 그 틈으로 우주가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바늘은 작고 가늘다. 또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바늘은 가장 강하다. 그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


바늘은 어떤 변신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다. 나는 바늘로 남자의 가슴을 강하게 만들었다. 우주를 빨아들이는 틈새로서의 바늘과 여성 성기는 어떤 무기보다 강하다. 어머니는 바늘을 잘게 갈아 스님을 서서히 죽였다. 



바늘은 어떤 변신도 가능했다. 

여성의 틈새 또한 그럴 것이다. 어떤 존재도 태어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 문제는 언제나 작은 틈에서 생겨난다.


큰 것들은 보기에 좋고 위협적이긴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공허하고 힘이 들기 마련이다. 작은 틈에서 생겨나는 모든 문제들. 혹은 작은 변화에서 비롯되는 큰 파장들. 식물적인 이미지의 여성에서 육식을 즐기는 동물적인 여성성. 혹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여성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여성성.

천운영의 <바늘>은 그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비유로 말한다. 문장은 거침이 없지만 방종하지 않고, 감상적이기보다 사실적인 묘사는 냉정하고 흥미롭다. 집요하게 빠져드는 문장은 소설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읽고 나서 여운이 오래가는 소설이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바늘 하나쯤은 새기고 살아간다. 내가 찌르고 싶은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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