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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31. 2024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시간이 지나면 당신도, 나도 변한다

-혹시 텔레비젼 프로그램중에 "끝사랑"보세요?

-아니, 요즘 티비를 잘 안 봐

-아, 안보시는구나.

-근데 뭔지는 알아.

-저는 그 프로를 즐겨보는데요, 거기 나오는 출연자들 중에 목소리톤이 살짝 높고, 디게 밝은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만 보면 언니닮은 거예요. 남편한테도 **엄마랑 너무 닮았다고 하고, 제가 보다가 영상보낼까? 생각도 했다니까요.


토요일 오전, 아이들을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커피숍에서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올해 친해진 반아이의 엄마가 말을 꺼냈다. 웃으며 나중에 찾아볼께. 라고 하고 헤어졌다. 일정이 끝나고 집에 오자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을 했는데, 나와는 비교할 수 없게 예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히쭉히쭉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가 이 사람을 닮았다고? 이 사람을 보면 내가 생각났다니. 내가 그런가? 싶어 남편에게 영상을 보여줬는데, 남편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작년에 아들 대회에서 처음 만난 그 엄마의 첫인상은 세련되고 멋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밝에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만 했다. 그런데 올해 같은 반이 되고, 4개월동안 아이들의 대회를 준비하며, 일주일에 두 서번 만나며 말을 해 보니 첫인상보다 더 좋은 사람이었다.


 사실 아이들 엄마와의 만남은 언제나 힘들다. 첫아이를 키울 때는 멋 모르고,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근처에서 엄마들의 입김이 세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전업주부의 비율이 많고, 학교가 집과 떨어져 있어, 통학을 자가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행사에도 엄마들의 참여가 많고, 학교운영에도 적극적이다. 첫 아이를 키울 때는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학교에서 살다시피했다.


우리 아이가 혹시나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미리 걱정했다. 아이의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생일파티나 반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우리 아이는 그 아이들과 친하지도 않고, 같이 놀고 싶지도 않았는데, 엄마의 욕심으로 끌고 다녔다. 아이들이 노는 두세시간동안 엄마들과 앉아 있으면,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1학년때는 낯가림하는 아이들처럼 엄마들도 서로를 조심하게 대한다. 그러다 6학년이 되면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되고, 누군가 마음맞는 사람이 생기고, 무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둥둥 떠다닌다. 아무 의미가 없는 말, 안 그런 척 하면서 비난하는 말, 대놓고 내뱉는 말, 알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사생활이나, 아이들의 숨겨진 일들이 말을 타고 오간다.


피곤했다. 반모임에만 갔다 오면. 학교 돌아가는 것도 알고, 아이가 말하지 않는 학교생활도 궁금해서 갔다가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잔뜩 짊어지고 오면, 빡세게 운동한 날보다 더 진이 빠지고 힘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둘째는 코로나시국때문에 유치원졸업식과 초등학교 입학식을 못했다. 입학하고서도 5월까지 가정학습을 하는 날이 많았다. 학교 행사가 사라지거나 축소됐고, 엄마들이 따로 만나는 일도 없어서 편하고 좋았다. 적당한 거리두기는 사람사이에도 필요했다.


실패한 경험이 때론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큰아이때 엄마들 사이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지금 나는 둘째와 셋째 엄마들과 엄청 친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그럭저럭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너무 가까워지면 무례해지고, 말이 먼저 나간다.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심성이 사라지고, 그런 마음을 담고 말이 나가면 내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에게 닿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나는 말이 너무 많았다.



말은 나의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다. 말없는 남편은 내가 말이 많아서 좋았는데, 지금은 쓸데없는 말만 하는 게 싫다고 한다. 나는 말을 붙이는 걸 잘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상대가 하는 말을 들으며 말을 이어가는 게 재미있다. 그런 내게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이나 고민을 잘 털어놓는다. 나는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듣고, 답을 한다. 그리고 잊어버리거나 인상깊으면 글로 남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하는 말이 다른 이의 입을 거치며 변질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말은 좋아하지만 옮기는 것을 싫어한다. 말하는 것도 잘하고, 말을 옮기는 것도 즐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특징은 말을 잘 들어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것처럼 친절하게 굴다가도,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금새 다른 상대를 찾아 떠난다. 내게 다른 이의 허물을 말하듯 어디선가 나를 올려놓고 씹고 있을 것이다. 같이 있으면 든든하지만, 멀어지면 불안한 사람이었다.



말은 형태가 없는 대신 뉘앙스가 있어서 앞에서는 어울리는 말도, 전해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때가 있다. 전달하는 사람에 따라 소소한 에피소드가 심각한 일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일을 입에 올리는 것도 싫지만, 내가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다. 중요한 건 내가 모르면 된다. 친동생보다 더 잘 만났었는데, 지금은 길에서 보이면 멀리 돌아서 간다. 모르면 그냥 지나칠 일인데 알게 되서 문제다.


   꼭 필요할 때만 나간다. 사람을 안 만나니 내 시간이 늘어났다. 언제부턴가 말을 줄이고, 글을 쓴다. 글은 말보다 느리지만, 말보다 힘이 세다. 말은 내뱉고 나면 주워담을 수 없지만, 글은 써내려가고 난 후, 퇴고가 가능하다. 정리되지 않은 말은 사람을 우습게 만들지만, 잘 정돈된글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사람들과 말하는 게 좋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사람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게 좋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이, 하고 싶은 말이 글이 된다. 늘 상대의 말을 듣느라 정작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나와 말을 한다. 가을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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