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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Oct 23. 2024

가끔 꽃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마음


엄마,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


왜?


그냥. 맨날 아빠는 게임만 하고, 커피 마실 때만 엄마 부르고, 엄마가 짜증 날 거 같아.


아니야, 아빠가 엄마 얼마나 사랑하는데. 안방에 꽃다발 리본 봤지? 아빠가 엄마한테 어마 어 하게 큰 꽃바구니 선물해 준 거야.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들 틈에서 꿋꿋하게 게임을 하시던 남편분왈.


그거. 내가 산 거 아닌데.


뭐?오빠가 나 조리원에 있을 때 밖에 나가서 사 온 거잖아.


00 이가 아무 말도 안 했구나? 그거 내가 00한테 사 오라고 해서  온 거.


-잠시 적막-


아이고 이 사람아.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꽃다발처음 받았다고 역시 아이를 낳아야 받아보는구나. 아무리 무뚝뚝한 남편이라도 할 건 다 하는구나. 감동 먹었었는데



동생이 결혼선물로 준 십자가액자와 남편의 꽃다발문구


19년이나 자기가  사 척했던 남편이나 언니 실망할까 봐 말하지 않은 동생이나 똑같다. 이런 백일동안 동굴에서 마늘만 먹고  인간이 된 곰들으니.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살았다.




남편은 화낼 줄 알았던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자 이상했는지 말이 많아진다.


-그래도 내가 너 상 받을 때 꽃다발 안겨줬잖아.

- 그거? 내가 당신 카드 꽃집에 가서 포장하고 당신한테 건네준 거? 사진 찍을 때 맞춰서 가져다준 그 꽃다발?

-어쨌든 사 준 건  사준 거네.




멋대가리 없는 사람과 살려면 얼마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과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길을 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으면 혼자 꽃을 사고, 혼자 감상하고, 혼자 좋아하는 것이 일상이 된다.




남편이 뭐라 하든 나는 열심히 철마다 꽃을 샀다. 노란 프리지어는 집 안에 향기를 선물한다. 빨간 장미는 안개꽃과 함께 있을 때 돋보인다. 가을이면 노란 국화가 한데 어우러져 가을정취를 자아낸다. 하지만 가장 이쁜 꽃은?




8살 때 발레공연이 끝나고

큰딸은 6살 때부터 발레를 했다. 팔다리가 길고 몸이 유연했다. 순전히 엄마욕심에 발레를 시작했는데 잘했다. 이왕이면 6학년때까지 해서 고급반에서 끝내기를 바랐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 내 마음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발레를 했던 5년 동안. 그리고 합창단활동 3년을 하면서 공연을 많이 했다. 나는 발레공연이 좋았다. 공들여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나풀거리게 춤을 추는 딸아이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그리고 언제나 마지막은 꽃다발 한가득 안기기.




  꽃다발은 공연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당신의 공연을 잘 봤습니다. 훌륭한 공연이었습니다."라는 말을 꽃다발과 함께 건넨다. 그럼 당사자는 꽃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연습했던 시간의 고단함을 날려버린다. 먹을 수도 없고 며칠이면 시들어버릴 꽃다발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딸에게 발레를 계속 시킨 게 엄마의 욕심이라는 걸 인정한다. 어쩌면 나는 딸을 통해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것을 대리만족했는지도 모른다. 그럼 또 어떤가? 못할 짓을 시킨 것도 아니고 프로가 되라며 재촉하지도 않았는데. 딸아이 덕분에 벽에는 언제나 커다란 꽃다발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어느 날 그 꽃다발을 다 치웠을 때 딸은 발레를 그만두었다.



언니에게 주기 전 사진찍어달라는 막둥이

똑같은 딸이지만, 막둥이는 발레도 합창단 활동도 하지 않는다. 언니, 오빠를 따라다니느라 바빠서 막내시간을 따로 뺄 수가 없다.


첫째를 키울 때는 의욕도 체력도 넘쳤는데, 막둥이는 발로 키운다.


불공정은 어디서나 존재한다. 발레 공연이 끝나면 언니에게 안겨줄 꽃다발을 사러 간 막둥이가  꽃다발을 만지작거리며 예쁘다고 중얼거린다.


엄마가 나중에 우리 막둥이 공연하면 더 예쁜 꽃다발로 준비할게. 했더니 그제야 얼굴이 핀다. 꽃보다 더 예쁘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꽃다발을 받고 살까? 축하할 일이 있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백배쯤은 부풀려서 축하해주고 싶다.  어떤 날은 신문지에 대충 싼 장미다발을 받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향기 가득한 프리지어를 받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줄 꽃다발을 고르고 준비하는 동안 받는 기쁨만큼이나 주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라는 자리는 받기보다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초보였던 엄마의 자리에서 매일 성장함을 느꼈다. 내가 돋보이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빛나는 게 더 좋다.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자신의 몸이 인간의 욕심으로 꺾여도 제 모양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꼿꼿하게 버티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도 예쁘고 혼자서도 빛난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서도 원망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피어나 홀로 빛난다. 꽃보다 못한 제 마음을 꽃을 보며 위로받는다.




 누구나 꽃처럼 살기를 원한다. 모두가 다 아름답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주목받기를 원하고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럼 그 꽃은 누가 바라볼까? 모두가 꽃이 되어 버리면 보는 사람 하나 없을 텐데. 그럼 감탄해 주는 사람도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어진다. 꽃은 홀로 빛나도 상관없다는 듯 산속에서도 그늘에서도 피어나지만, 사람은 누가 봐주지 않으면 피어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홀로 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은 꽃 같아서 좋다.




나는 가끔은 꽃이 되기도 하고 꽃을 주는 사람이고도 싶다.


어떤 날은 주인공이 되고 축하를 받고, 어떤 날은 관객이 되어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치고 싶다. 매일 빛나는 꽃이 아니라 저녁이면 고개를 숙였다 아침이면 다시 해를 향해 고개를 드는 그런 해바라기가 되고 싶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함께 어울리면 도드라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아주 가끔 꽃이 되고 싶다. 그리고 자주 꽃선물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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